국제곡물가격 고공행진은 매년 농지면적과 주요 농산물 자급률이 눈에 띄게 주는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특히 주요 곡물 생산국들이 수출에 제동을 거는 데다 극심한 식량 부족 사태를 겪는 북한까지 고려하면 당장 가시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도 느긋할 수 없는 상황이다.
◆취약한 자급률=197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모자라는 식량을 외국에서 사 올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보릿고개를 겪었으며, 영양실조 인구도 적지 않았다. ‘밥 먹었냐’는 아침인사는 그 시대 우리의 식량 사정을 대변한다.
경제개발이 본격화한 1970년대, <통일벼> 개발은 쌀 자급기반을 다졌다. ‘쌀은 곧 식량’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쌀 자급은 식량정책의 완성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낳게 했다. 그렇지만 육류 수요가 늘면서 사료곡물 수입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곡물자급률은 1970년 80.5%에서 1980년에는 56%로 곤두박질쳤다.
또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이어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기간 중 선진국들은 농산물 무역자유화에 대비해 자급률 향상에 힘썼지만, 우리나라는 아무런 대책 없이 개방을 맞았다. 이후 쌀은 자급을 이뤘지만, 밀과 옥수수는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게 됐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곡물자급률은 110%에 달한다. 호주 275%, 캐나다 174%, 프랑스 168%, 미국 133%인 반면 우리나라는 26.7%에 불과하다. 거의 꼴찌 수준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식량 수입은 특정 국가나 일부 곡물메이저에 편중돼 있다. 전체 곡물 수입물량 중 80%를 카길 같은 곡물메이저와 일본계 종합상사에 의존한다. 또한 장기 공급계약보다는 필요시 최저가 입찰방식에 따라 구매하는 방식인 만큼 가격 위험에 노출돼 있다.
◆쌀도 장담 못해=“우리나라는 국제 쌀값 급등의 폭풍에서 한발짝 비켜서 있다.”(<ㅈ일보>) 국내 언론들은 앞다퉈 국제곡물값 폭등 관련 기사를 쏟아 내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의 주식인 쌀과 관련해서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쌀 자급률이 100%에 육박하는 데다 우리나라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이 매년 크게 늘어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쌀 수급에 있어 안심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반복되는 수급 불안은 쌀산업의 위기를 더해 가고 있다. 2009년과 2010년엔 재고과잉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햅쌀 부족이란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햅쌀을 마구 방출하면서 10월 말이면 정부 곳간에는 2010년산이 한톨도 남지 않게 된다.
양곡업계는 올해 작황이 지난해 수준에 그친다면 내년 국민 식탁에 3년 묵은 쌀이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고 내심 걱정하고 있다. 올해 벼 재배면적은 85만2,000㏊로 작년보다 4.5%(4만㏊) 감소했다. 또 불량볍씨 파동과 이상기온으로 풍작에 대한 기대가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나라 밖 사정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중단립종 쌀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중국·호주·이집트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호주는 수년간 가뭄이 이어지면서 쌀 생산이 사실상 중단됐고, 이집트는 정부가 수출을 막고 있다. 중국은 2~3년 후면 쌀 수입국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도 쌀농가들이 밀·콩 등 다른 작목에 눈을 돌리면서 생산면적이 크게 줄어드는 추세다.
이에 따라 돈을 주고도 쌀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곳간을 외국산으로 채우던 필리핀은 웃돈을 주고도 쌀을 사들이지 못하면서 민란까지 벌어졌었다.
◆농지 감소도 걱정거리=정부는 최근 2015년 곡물자급률 목표치를 기존 25%에서 30%로 높였다. 이 30%를 지키기 위해 최소 확보해야 할 농지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65만㏊를 제시했다. 하지만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농지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2010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경지면적은 171만5,000㏊로 1년 전의 173만7,000㏊보다 1.2%(2만2,000㏊) 줄었다.
특히 최근 10년 중 경지면적 감소율이 1%를 넘어선 해는 다섯차례로 모두 2006년 이후에 몰려 있다.
게다가 주로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에서 이뤄지던 농지전용이 최근에는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 내에서도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농지전용 면적 중 농업진흥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과거 20%대에서 2009년엔 38%로 늘었다. 진흥지역의 농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보니 산업단지나 택지 등의 대규모 개발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농지전용이 가속화되는 또 다른 이유는 농지가 투기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경연에 따르면 농지 소유주와 실경작자가 다른 임차농지 비율은 2007년 기준 42.8%로 일본의 17.7%(2003년 기준)보다 월등히 높다.
농경연 관계자는 “1980년대 이후 농지 규제가 완화되면서 투기적 농지 소유가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은 물론 투기세력인 농지 소유주까지 농지 개발에 몰두하는 등 농지전용을 막을 방패막이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