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도 찾는 이 없으면 바윗돌만도 못한 것이래요….”
추석 휴무를 끝내고 두번째 경매가 이뤄진 15일 밤 서울 가락시장 배추 경매장은 김장철을 방불케 하듯 ‘배추 천지’나 다름없었다. 강원 강릉·삼척·정선·평창·태백 등 고랭지채소 산지에서 수확한 배추가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날 가락시장에 들어온 배추는 5t트럭 146대 분량인 1,168t. 전날(951t)보다도 22.8%나 늘어 시장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배추를 실은 차량이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자 아예 상장을 포기하고 다른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트럭도 여럿 보였다.
오현석 대아청과 경매사는 “추석 이후에도 배추 출하량이 줄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오늘 가락시장에 들어왔다가 출하를 포기하고 다른 시장이나 김치공장 등으로 이동한 트럭만도 10대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한달여 전만 해도 ‘황금배추’로 불리며 물가당국을 긴장시켰던 배추가 이제는 시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찬밥’ 신세로 추락했다.
이날 가락시장의 배추(10㎏ 상품 한망 기준) 경락값은 평균 6,125원으로, 전날보다 2,000원 이상 빠졌다. 한달 전만 하더라도 1만원을 훌쩍 넘었었다. 문제는 배추값 하락세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당분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산지 고랭지배추 물량이 추석 전 출하를 완료한 것보다 추석 이후 출하할 물량이 더 많아서다.
박두우 삼척농협 하장지소장은 “하장면 일대 1,000㏊의 고랭지배추 재배면적 가운데 추석 이전에 출하를 완료한 곳은 40%밖에 안된다”고 밝혔다. 도매시장 관계자들도 고랭지배추 산지에 출하 대기 물량이 출하한 것보다 더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배추도 사과·배처럼 추석 이후엔 특별한 수요 요인이 없는데, 공급이 넘쳐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농업관측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농업관측에 따르면 9월 고랭지배추 출하동향이 지난해보다 면적과 단수 증가로 상순에는 12%, 중하순엔 30% 이상 늘어나는 등 하순으로 갈수록 증가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어 10월에도 준고랭지 2기작과 가을배추 재배면적 증가로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26%나 늘어날 것으로 관측됐다. 따라서 9월 중순 이후엔 출하량은 증가하는 반면 수요는 감소해 배추 도매값(상품 10㎏ 한망 기준)은 5,000~8,000원, 10월에는 4,500원 안팎으로 전망된다고 농업관측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관측은 관측일 뿐 배추값 상황이 예상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배추 주산지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한 중간상인은 “고랭지배추 출하가 9월 말까지는 이어질 텐데, 집집마다 냉장고에 김치가 가득 차 있어 수요가 거의 없는 게 문제”라며 “가을배추도 신규 재배면적이 크게 늘어 지난해 ‘금배추’에서 올해는 환영받지 못하는 ‘푸성귀’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