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농산물의 일본 수출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일부 무리한 수출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자칫 일본 수출시장을 망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일본에 멜론과 수박을 수출하는 업체인 나리트레이딩의 신은진 대표는 얼마 전 일본측 바이어로부터 한국 농산물에 대한 걱정을 들어야 했다. 최근 한국에서 일본 도쿄지역에 수박을 수출했는데 수출한 물량 대부분이 과숙 상태여서 판매하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농산물을 들여오려면 잘 살펴야 한다는 충고도 들었다고 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파견중인 농촌진흥청의 위태석 연구사도 친분이 있는 도매시장 관계자들로부터 우려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대지진 이후 일본에 수출되는 한국 농산물의 품질이 예전 같지 않은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농산물 공급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일본측의 수입조건이 예전만큼 까다롭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일부 사람들이 무조건 수출을 하고 본다는 것이다.
위연구사는 “수출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지금을 일본 수출의 호기라고 생각하고 섣부르게 수출시장에 뛰어들면서 생긴 일”이라면서 “일부 섣부른 수출업자들 때문에 한국 농산물 전체가 평가절하되는 일이 벌어질까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내 농산물 수급상황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자 수출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이어지는 무리한 수출 시도들로 인해 일본 수출이 오히려 어려워지는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현재 원자력발전소 사고 피해지역인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복숭아가 유통되는 등 농산물 수급이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이다. 수박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공급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조건에 맞지 않는 농산물을 계속 수출한다면 한국 농산물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일본 바이어들이 당장은 부족한 농산물을 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한번 실망하게 되면 두번 다시 한국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지진 이후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던 농산물의 일본 수출실적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의 검역통계자료에 따르면 종자·절화·묘상 등을 제외한 농산물의 일본 수출실적은 전체 수출실적 중 절대량을 차지하는 대두박(콩깻묵)을 제외하면 올 8월 현재 1만7,739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8t 줄었다. 수박·멜론·토마토 등 일부 품목만 수출실적이 증가했을 뿐 다른 품목들은 오히려 줄거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일본 홋카이도의 도매시장 교큐이치에서 근무하는 농산물 바이어 이시자카 히토시씨는 “당장은 농산물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평소 기준에 비해 못 미치는 한국 농산물이라도 수입해 오는 경향이 있겠지만 그것은 올해까지일 것”이라면서 “내년부터는 후쿠시마현에서 채소 재배가 다시 시작되고 일본 내 농산물 수급이 안정을 되찾으면 올해 이미지가 나빴던 산지에서는 수입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