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업자들이 2009년산 묵은쌀을 2010년산이나 2011년산 햅쌀이라고 속여 팔아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과학적인 검사방법도 없이 2009년산 묵은쌀을 싼값에 대량 공매함으로써 시장의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본지의 취재 결과 수입쌀과 국산쌀은 유전자검사를 통해 어느정도 구분이 가능하지만, 국산쌀을 생산연도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관계자는 “구곡과 신곡을 판별할 방법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없고, 유전자검사로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신선도에 따라 어느 정도 확인은 가능하나, 2009년산도 보관을 잘하면 신선도가 좋을 수 있어 과학적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물가안정을 명목으로 올 5월부터 9월 초까지 2009년산 벼 40만2,000t을 공매했다. 공매 때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조곡 40㎏에 2만6,180원, 2만3,500원 등의 싼값에 판매돼 20㎏ 쌀 한포대에 산지에선 1만8,000원 선, 인터넷에선 2만원대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수입쌀보다도 싸게 팔리는 기현상도 빚어졌고, 2010년산 쌀값에도 크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물량은 2010년산과 섞은 ‘혼합미’로 판매돼 “생산연도와 혼합비율을 허위표기할 수 있다”는 양곡업계의 우려가 컸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혼합쌀 홍보전단지까지 배포하며 농업계의 원성을 샀다.
허위표시에 대해선 “2009년산 공매업체를 대상으로 장부상 수치와 재고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검사한다”는 것이 농관원의 입장이다.
하지만 양곡 전문가들은 정부 단속이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포장지에 혼합미라고 표시하면 혼합비율을 속여도 과학적 검증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또 올해는 정부가 도정시설을 보유하지 않은 법인과 개인에게도 2009년산 공매자격을 부여했는데, 과연 모든 법인과 개인을 추적·단속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다.
이를 반증하듯 정부가 혼합비율과 생산연도 허위표시로 적발한 건수는 2008년 7건, 2009년 4건, 2010년 1건, 올 1~8월 10건에 불과하다. 일부에선 “최근 인터넷에선 2010년산이 20㎏당 3만원대 초반에 판매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현 조곡 시세로는 나오기 힘든 가격이고, 2009년산 혼합미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한 양곡 전문가는 “정부가 2009년산을 공매하면서 판매기간을 정하지 않음으로써 물가 안정이란 목표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고, 허위표시 단속도 과학적 방법이 없어 쉽지 않게 됐다”며 “아직까지도 2009년산이 10만t 이상 시장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돼 한동안 시장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