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벼베기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산지에선 때아닌 벼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농가들이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출하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선지급금이 시세보다 15~20% 낮은 공공비축은 농가들의 외면으로 연말까지 목표량 34만t(쌀 기준)을 모두 채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10일 현재 전국의 벼베기는 97%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농협과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유통업체들의 벼 매입량은 목표량의 63.4%, 지난해 같은 기간의 92.2%에 불과하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올해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다소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농가들의 출하 기피 현상이 매우 강한 편”이라며 “대농은 물론이고 벼 보관창고가 없는 중소농까지 농기계창고나 비닐하우스에 벼를 쌓아 두고 가격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지유통업체 가운데 사정이 더욱 어려운 쪽은 민간 RPC다. 농협이 목표량의 68.5%를 매입한 데 반해 자금력이 약한 민간 RPC는 38.6%를 사들이는 데 그쳤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관계자는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경기·강원지역 민간 RPC와 도정공장 업자들이 벼값이 다소 저렴한 중남부지역까지 내려와 벼를 사고 있다”며 “이들이 벼의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점검반 5개조를 현장에 급파했다”고 말했다.
농가들의 출하 기피가 계속되면서 쌀값은 수확기임에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5일 기준 산지쌀값은 80㎏ 한가마에 16만5,132원으로 열흘 전보다 900원(0.5%) 올랐다.
같은 기간 벼값도 40㎏ 한포대가 5만2,200원에서 5만3,029원으로 829원(1.6%) 상승했다. 11월 쌀값이 16만5,000원을 넘어선 것은 2000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쌀값이 강세를 보이면서 올해산 쌀에 대한 변동직불금이 지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산지쌀값에 고정직불금(1만1,475원)을 더한 금액만으로도 정부가 정한 목표가격(80㎏ 한가마에 17만83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쌀 소득보전직불제가 도입된 2005년 이후 변동직불금이 지급되지 않은 것은 2008년산뿐이다.
농가의 높은 기대심리는 공공비축 출하 기피로 표출되는 양상이다. 11일 끝난 공공비축용 산물벼 수매는 목표량 7만t(쌀 환산 기준)의 65%에 불과한 4만5,500t에 그쳤다. 또 산물벼와 포대벼를 합한 전체 매입량 역시 목표량의 22%, 지난해 같은 기간의 51.2%에 불과한 실정이다.
농가들이 공공비축 출하를 꺼리는 이유는 우선지급금이 40㎏ 한포대에 4만7,000원으로 산지유통업체들의 매입가격보다 6,000원가량 낮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남도·경북도·충남도는 우선지급금을 산지유통업체의 매입가 수준으로 인상할 것을 농식품부에 건의했다.
여기에 전국농민회총연맹은 ‘포대당 수매가 최소 6만원 보장’을 요구하며 공공비축 출하 거부운동을 전개중이다. 투쟁 수위가 가장 높은 전남은 11일 현재 목표량의 10%도 채우지 못했다.
정부는 올해 목표량을 다 사들이지 못하더라도 공공비축 마감시한(12월31일)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공공비축용 벼를 꼭 수확기에만 사야 할 이유는 없다”면서 “연말까지 34만t을 모두 사지 못하면 내년에 RPC에서 직접 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