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려도 이렇게 안 팔리다니…. 화물차를 산지로 빨리 내려보내야 하는데 며칠째 배추가 팔리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상할 따름입니다.”
지난 15일 밤늦은 시각에 찾은 서울 가락시장 배추·무 경매장. 김장철 성수기를 맞아 차상경매가 끝난 배추와 무들이 팔려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매장은 한산하기만 하다. 잠시 후 식당에 납품하기 위해 장을 보러 나온 듯한 소형 화물차가 시장에 들어서자 난데없이 고객 쟁탈전이 벌어졌다. 중매인들과 매장 내 상인들이 일시에 차량 주변으로 몰려들어 자기 것을 사 가라고 몸싸움을 벌이는 통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것.
지난해 값이 크게 올랐을 당시만 하더라도 배추와 무를 식당 등에 납품하는 차량들이 서로 물건을 먼저 달라며 중도매인과 치열한 흥정을 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배추를 취급하는 중도매인 최기한씨는 “이틀째 배추를 팔아 봤지만 낙찰받은 물건의 반도 처리하지 못했다”면서 “값이 폭락하다 보니 배추 소비가 완전히 실종됐다. 나머지도 어떻게 팔아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라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중도매인 박상래씨는 “배추 한차를 파는 데 닷새나 걸렸다”면서 “산지 농가도, 시장 내 상인도 모두 죽게 생겼다. 정부에서 재배면적을 늘리라고 독려하고 중국산 배추를 수입해서 값을 폭락시켰으니 당장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잉생산으로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배추와 무가 도매시장에서도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가락시장에 최근 반입되는 물량(5t차량 기준)은 배추가 하루 150~160대, 무가 100대가량에 이른다. 하지만 매기가 뚝 끊겨 배추와 무는 지속적인 값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5일에 출하된 배추는 상품 10㎏ 한망이 2,200원, 무는 18㎏ 한상자가 평균 4,100원에 거래되는 등 연일 생산비 이하에서 값이 형성되고 있다.
이처럼 도매시장에서 배추와 무값이 폭락하고 소비도 줄면서 중매인들이 낙찰받은 배추와 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 잔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중도매인들도 산지에서 출하된 배추와 무의 구매물량을 크게 줄이면서 값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지 대기물량은 넘쳐나는데 소비지에서 이를 처리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오현석 대아청과 경매과장은 “작황이 좋은 탓에 단수도 늘어 52망크기 한망당 평균 13~14㎏까지 나가는 등 생산량이 예상보다 많아지면서 값이 더 하락했다”면서 “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11월 말쯤에는 자칫 경매가 불가능한 상황까지도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