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속의 성분을 빼내 엉기게 한다는 점에서 두부와 묵은 비슷하다. 둘 다 저칼로리·다이어트·웰빙식품이라는 점도 같다. 하지만 두부는 단백질에 간수를 쳐 굳힌 거고 묵은 전분을 쒀 식혀 가며 굳혔다는 점에서 둘은 분명 다른 음식. 두부와 묵이 서로 잘났다며 <농민신문> 지상에서 만났다. 과연 누구의 말발이 더 셀까. 오늘 저녁상에 두부를 올릴지 묵을 올릴지는 둘이 펼쳐 놓는 용호상박 ‘자뻑’담을 들어보고 판단하시길.
#두부 “찬바람 불면 내 생각한다니깐”
쪽파 송송 썰어 넣은 양념장에 찍어 먹는 고소한 모두부, 뜨듯하게 데운 두부에 신김치 살짝 볶아 올린 상큼한 두부김치, 달걀 물로 옷 입혀 노릇노릇하게 지져낸 두부전…. 어때, 절로 침이 고이지 않아?
가을걷이가 끝난 이 계절, 찬바람이 불 무렵이면 더욱 맛나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나 두부야. 아마 농촌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라면 맷돌에 햇콩 갈아 콩물 만들던 어머니, 불땀 좋은 가마솥을 저어 몽글몽글 엉기는 순두부를 한국자 떠주시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 한자락씩 가지고 있을 걸?
인류의 역사는 음식의 역사라지만, 나만큼 신비로운 음식도 있을까. 나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무시하는 음식이야. 콩 한되로 두부를 만들면 두부 한되, 비지 한되가 나오거든. 한마디로 양이 두배로 늘어나는 셈이지. 실제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알 거고, 아아, 이게 과학적으로 맞나 안 맞나는 여기서는 따지지 말자고. 나의 부산물인 비지찌개 맛도 일품이지. 두부 만들고 남은 비지에 김치와 돼지고기 좀 다져 올리고 새우젓국 쳐서 바특하게 끓여내면, 캬! 이것도 밥도둑이라니까. 특히 하룻밤 정도 아랫목에 띄운 경상도식 비지장은 쿰쿰하기가 청국장이나 삭힌 홍어에 버금간다고.
아, 그리고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 ‘큰집’에서 옥살이하고 나온 이들에게 두부를 먹이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 두부는 콩에서 나왔으나 다시 콩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곧 이 풍습에는 다시는 ‘콩밥’ 먹지 말라는 당부나 염원이 담긴 게지. 그만큼 의미가 남다른 식품이라고나 할까, 흠흠!
이제 김장철인데, 햇김치에 두부 한모 썰어 놓고 막걸리 한잔 어때? 산해진미가 부럽잖을 걸. 어허, 내 얘기 듣고 있는 사람들, 침 삼키는 소리 좀 봐. 두부 안주에 막걸리잔 기울일 저녁참 기다린다고 오후 나절이 한없이 더디 가겠군. 큭! ◇도움말=한국두부연구소
#묵 “다들 한번 잡숴 봐~몸이 좋아해”
어쭈, 두부도 상당한데? 그럼 진검승부를 한번 벌여 볼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영양과잉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을 ‘몸짱’으로 만들어 줄 가장 이상적인 식품이라고 할 수 있지. 대부분의 묵은 수분 함량이 80%는 되는 데다 묵 중 양분이 많다고 하는 도토리묵의 경우에도 열량이 100g에 40㎉에 불과하니 살찔 틈이 어딨겠어? ‘예전의 구황식품이 오늘날의 웰빙식품’이라던데, 나야말로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으니 다들 한번 잡숴 봐.
구황식품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도토리나무는 들판을 내려다보며 열매 맺는다’는 사실은 아시나들? 동산에서 마을 들녘을 내려보고 있다가 흉년이 들어 곡식이 모자란다 싶으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다는 게 바로 도토리나무야. 양식이 모자라는 이들은 도토리묵이라도 맘껏 쒀 먹으라는 갸륵한 마음 씀씀이지.
메밀은 또 어떻고.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생육 기간도 가장 짧은 작물 중의 하나야. 모내기철이 됐는데도 비는 오지 않고 시간만 가 결국 그해 벼농사를 접어야 했을 때, 옛날 농부들은 서둘러 메밀 씨를 뿌렸지. 쑥쑥 자라는 메밀 덕분에 두달 뒤면 주린 배를 달랠 수 있었으니까.
난 종류도 많아. 도토리묵·메밀묵·청포묵·밤묵·칡묵·우무묵·올챙이묵…. 뭐든 굵직하게 채쳐서 신김치·김가루에 깨소금 좀 뿌리고 시원한 멸치 육수에 말아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지. 입맛 당기는 이들은 당장 주변에 쓸만한 묵밥집이 있나 찾아보도록 하고, 끝으로 북대전 묵마을 ‘솔밭묵집’ 주인장 우창희씨가 들려준 얘기 하나 옮기면서 내 얘기 끝낼게. 아마 여성들은 모두 혹할 걸? “정윤희·장미희와 함께 1970~80년대 트로이카였던 유지인 알쥬? 그 양반 미모 비결이 우리집 묵였슈. 거의 날마다 오다시피 했다니께.”
출처 :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