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가지가 쌀밥·장류·김치다. 이들을 구성하고 있는 농산물은 쌀과 콩, 무·배추, 고추·마늘 등이다. 그중 고추는 김치와 고추장뿐 아니라 갖가지 반찬의 양념으로 폭넓게 쓰인다. 쌀·콩·배추 등과 함께 한국인의 건강 및 정체성을 지탱해 주는 대표 농산물이다.
그런 고추의 국내 자급률이 끝없는 하락세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고추 생산량은 7만7,100t으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연간 수요량이 18만7,000t임을 감안할 때 고추 자급률은 41%에 불과하다. 고추 자급률은 2000년 91%, 2005년 74%, 2010년 51% 등으로 떨어지다가 급기야 올해 5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 땅의 주요 작물이던 밀과 콩이 이미 절단 난 데 이어 이제 고추가 같은 운명의 길을 가게 됐다.
우리나라는 된장·고추장의 주재료인 식용콩의 70% 정도를 수입으로 충당한다. 유구한 ‘장류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가 이처럼 원료콩의 대부분을 수입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산 김치는 최근 10년 새 수입량이 400배가량 폭증했다. 이 마당에 고추마저 절반 이상을 중국산 등이 대체한 현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허문 것과 같다.
오늘날 한국인은 날마다 빵·국수·열대과일·수입삼겹살을 즐기고 수입와인으로 목을 축여 고유의 식문화마저 흐릿해졌다. 물가가 9개월 연속 고공행진이고 저소득층의 엥겔계수가 7년 만에 최고치라 하니 정부로서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장기적 안목에서 지킬 것은 지켜 가야 한다.
작금의 수입 확대를 통한 물가 안정대책은 국내 생산기반 붕괴→물가 앙등→수입 확대의 악순환을 촉진할 뿐이다. 물가당국이 ‘고추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 농업의 불임(不姙), 나아가 소비자 식탁의 불안정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