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이 농가에 미칠 심리적인 타격은 축산업, 그중 양돈산업에 가장 크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한·미 FTA 발효 후 10년 차의 양돈분야 피해액이 2,065억원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까지 사료가격 급등과 소모성질병·구제역 등으로 농가수가 2006년 1만1,300호에 비해 30% 감소한데다, 연달아 한·유럽연합(EU) FTA까지 체결된 이후라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
◆갈수록 옥죄드는 양돈 현실
축산 선진국인 덴마크·네덜란드는 모돈 한마리당 연간 비육돈 출하마릿수(MSY)가 25마리에 달한다. 우리의 15.2마리보다 65%나 높다. 비육돈의 사료 요구율도 우리보다 10% 낮아 생산비를 한마리당 최고 2만6,000원까지 절감한다. 특히 이들 선진국은 이유 후 폐사율이 8%(우리나라는 19.5%)로 매우 낮아 생산성이 높다. 미국도 유럽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보다 생산성 등 다방면에서 크게 앞선다. 게다가 미국은 유럽과 달리 냉장육을 선박으로 운송할 수 있어 가격은 물론 품질 면에서도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구제역 이후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아 양돈농가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가축사육 거리제한’ 조례 등을 통해 축사 신축 등의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정부의 무관세 돼지고기 수입 확대로 외국산 냉장삼겹살이 소비자 입맛을 자극, 수입육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또한 크게 무디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양돈분야와 관련, 정부가 최근 제시한 구체적인 FTA 대책은 찾기 힘들다. 정부는 이미 4년 전 한·미 FTA 타결 당시부터 틈틈이 대책을 발표해 왔고, 지난 4월 내놓은 ‘축산업 선진화 방안’ 등에 담겨 있어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농가들은 정부 대책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며 강도 높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양돈협회는 정부의 양돈 자급률을 현행 80%에서 85%로 높여 장기적인 발전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사회기반시설(SOC) 차원에서 가축분뇨 처리시설을 확충해 지속 가능한 양돈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료가격안정기금도 조속히 마련해 정부가 생산비 절감에 앞장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농가 차원의 생산성 향상도 요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가에서 생존 산자수를 늘려 MSY를 18.2마리로 높이면 생산비가 10% 정도 낮아져 관세 없이 수입되는 돼지고기와도 가격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FTA 대책의 효율성도 문제다. 최세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의 FTA 대책과 향후 이어질 FTA에 따른 대책의 중복성 및 비효율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특히 FTA 후기로 갈수록 피해가 더욱 증가하지만 대책은 초기에 집중돼 있어 품목별 상황을 고려한 지원기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품질 고급화도 관건이다. 미국·유럽은 생산비 등이 우리보다 월등히 낮고, 갈수록 관세마저 떨어져 기댈 곳이라고는 품질밖에 없다는 것.
정영철 정P&C연구소장은 “쇠고기와 달리 돼지고기는 도축단계에서만 등급판정제가 실시될 뿐 정육점 등에서는 유명무실해 농가의 품질 고급화 의지를 꺾고 있다”면서 “현재 시범단계에 있는 돼지고기 등급판매제를 판매단계까지 의무화하고 시행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