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기 원하는 농업인들이 의정부고용센터 앞에 모여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살을 에는 한파 속에 서 있는 농업인의 모습이 위기에 처한 우리 농업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의정부=김주흥 기자 photokim@nongmin.com
9일 오후,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에 위치한 의정부고용센터 앞의 모습이다.
다음날(10일)이 농축산업부문의 2012년 상반기 외국인 근로자 고용신청을 하는 날이기에 미리 줄을 선 농업인들이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신청이 고용센터 내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빚어진 현상이다. 의정부고용센터가 관할하는 6개 시·군(경기 포천·양주·동두천·의정부·연천, 강원 철원)의 농업인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이들에게 다가가니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이 추위에 일도 못하고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한마디로 전쟁입니다. 전쟁. 이런 행정은 하면 안됩니다.” 김계준 포천시 시설채소연합회장이 격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한 농가는 “보통 하루 전부터 줄이 형성되는데, 지난해는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받은 농업인이 50명에도 못 미쳤다”며 “농가들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올해는 신청일 나흘 전(6일)부터 줄서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들 농업인들은 먼저 온 순서대로 자체적으로 번호를 매기고, 2~3시간 주기로 인원점검을 했다. 인원점검 때 자리에 없으면 순서에서 빼는 방식이다. 고용센터 건물 벽면에는 100번이 넘는 번호와 이름이 적힌 대형종이가 붙어 있었고, 농가들이 바람이라도 막기 위해 쳐 놓은 2동의 텐트가 눈에 띄었다.
1번을 받은 남한억씨(강원 철원군 근남면)는 “6일 오후 6시에 도착해 아내와 교대로 자리를 지키는 중인데, 외국인 근로자를 구하기 위해 4박5일을 꼬박 지새우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국내에도 노는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인만 고집하느냐”는 질문에는 “일당 6만~7만원을 줘서 노숙자를 고용한 적이 있는데 하루이틀이면 그만두기 일쑤였다. 외국인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설채소농가인 홍순정씨(경기 양주시 백석읍)는 “7일 오후에 도착해 26번을 받아 3일을 대기중”이라며 “4명을 원하는데 1~2명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김길봉씨(경기 포천시 일동면)는 “일손이 달려 수확을 못하면 채소값이 올라가고 물가도 올라가 결국 소비자들이 손해”라면서 “정부가 물가관리한다고 난리 치면서 왜 물가 인상 요인이 되는 농촌인력 문제에는 무관심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농가들은 “정부가 농축산업부문 외국인 배정쿼터를 늘려야 하고, 추운 날 줄 서는 고통이 없도록 사전 수요조사를 통해 지역별 쿼터를 배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올해 외국인 근로자 전체 도입쿼터는 5만7,000명으로 이 가운데 농축산업에 배정된 인력은 상반기 2,700명을 포함해 4,500명에 불과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고용노동부 산하 전국 72개 고용센터 가운데 상당수 고용센터에서 매년 농업인 밤샘 줄서기가 반복되는 이유다. 시장 개방에다 구인난까지 시달리는 농업인들에게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