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민신문 포토DB
하지만 정부는 농업분야를 비롯한 핵심 쟁점과 관련된 국내 논의 절차를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해 한·미 FTA 협상 개시 전후와 같은 혼란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미 FTA 협상이 개시된 지난 2006년 2월 당시 정부는 국제관례와 협상전략상 정보 및 진행 절차를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진행 과정 일체를 막판까지 비밀로 하다 국내 절차의 마무리단계인 공청회를 형식적으로 연 직후 일방적으로 협상 개시를 선언해 농업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지난 9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FTA 본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시작하기로 합의한 이후 국내 상황도 2006년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 당시와 흡사한 움직임을 보여 농업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한·중 FTA 협상 개시에 앞서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함께 ‘한·중 FTA 대비 품목별 토론회’를 열면서 사전에 정부가 지정한 극소수 관계자만 모아 비공개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토론회는 큰 피해가 예상되는 마늘·양파와 관련해 농업인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협상전략 및 품목별 양허 방향을 모색한다는 취지를 내걸었지만 농업인을 대표한 핵심 이해당사자인 농민단체들은 모두 배제되고 일부 산지 관계자와 가락시장 유통인 대표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장병수 한국농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농업인을 대표한 농민단체들도 모르게 토론회를 열고 나중에는 충분히 의견을 들었다고 할 것이냐”고 비판했다. 박상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장은 “결국 협상 개시를 위한 명분 쌓기에 지나지 않는다”며 “더 이상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핵심 이해당사자들을 배제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이를 견제할 아무런 장치가 없어 한·중 FTA의 졸속 추진이 우려되고 있다. 통상조약 체결의 절차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통상절차법’이 마련됐지만 이마저도 당장은 효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회는 정부의 통상조약 추진에 대한 보다 철저한 사전검증과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근거 법률인 통상절차법을 지난해 12월30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고, 정부는 17일 이를 공포했다.
법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상이나, 2010년 한·미 FTA 재협상처럼 정부의 일방적인 통상조약 추진으로 인한 국민적 갈등과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통상조약이 추진되도록 국회의 견제 및 감시기능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법은 통상협상 개시 전에 정부가 조약 체결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해 정부의 일방통행식 협상 추진을 어느 정도 제어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통상절차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나야 시행된다. 결국 정부가 농업계의 강한 반발 속에도 국내 절차를 서둘러 진행한 후 일방적으로 한·중 FTA 본협상에 나선다면 현재로서는 아무런 견제수단이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통상절차법의 조속한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최인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여당은) 통상절차법 공포 즉시 국회에 한·중 FTA 관련 모든 정보의 공개와 협상 진행상황의 보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 발효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