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논에서 한 농민(충남 서산시 팔봉면 대황리)이 말라가는 벼의 생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서산=이희철 기자 photolee@nongmin.com
혹독한 가뭄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충남 서산과 태안지역 농가들은 속이 시커멓게 탄 지 오래다. 논농사·밭농사 할 것 없이 올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 농민들의 얼굴에는 허탈함과 분노가 교차했다.
서산시 부석면 강수리 일대 논밭에 물을 공급하던 강수저수지 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고 인근 구들저수지와 모항저수지(태안군 소원면), 지포저수지(태안군 안면읍)도 다를 바 없다. 모항저수지의 경우 죽은 물고기와 마른 연잎, 오물이 뒤엉켜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물이 사라진 저주지 주변 논에는 양수기만 즐비했고, 고지대 논은 밭으로 변해버렸다.
송연 파도지구 담수호추진위원장인 태안 소원농협 정등영 조합장은 “이 지역은 재작년엔 태풍, 지난해엔 수해, 올해는 가뭄으로 3년째 자연재해와 전쟁을 하고 있다”며 “250만t의 물을 저장할 담수호만 일찍 완공했어도 논밭이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구씨 등 지역주민들도 “재난상황인데 관련 예산을 언제 쓰려고 안 푸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북면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현동씨는 “관정이 아니라 저수지를 만들어야 해갈이 되는데 지자체에선 재정 타령만 한다”며 “25일을 넘기면 벼를 반타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바짝 마른 논밭에서 자라고 있는 마늘과 고구마·콩·쪽파 등의 생육상태도 심각했다. 본격 수확을 시작한 육쪽마늘은 대가 말라 뽑을 때 끊어지고 뿌리도 예년의 절반 크기였다.
류제상씨(서산시 부석면)는 “마늘농사 40년 만에 처음 겪는 가뭄”이라며 “한창 구가 자라야 할 3월부터 비가 오지 않았고 이상고온이 겹쳐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에 그쳤다”고 허탈해했다. 주변 고구마밭도 불에 탄 종잇장처럼 잎이 시커멓게 탄 채 두둑에 달라붙어 메워심기가 시급했다.
혹시라도 기다리던 단비가 내릴 경우를 대비해 서산시와 운산농협은 5,000여장의 육묘상자에 조생종 <운광>을 키우고 있다. 태안군 농업경영인들도 4만여장의 예비묘 육묘에 나서기로 했다.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원북면 일대 고구마 재배농가들은 하늘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며 두둑에 물을 주고 고구마를 심으며 마지막 희망을 이어가고 있지만 표정은 불안했다. 그러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가뭄 대비책이 하늘만 쳐다보는 것인지 신문에 꼭 써요! 아마 4대강 예산 일부만 가뭄 대책에 썼어도 이 정도는 아닐규…”라고 한탄했다.
한국농어촌공사 충남본부에 따르면 충남에서 가장 가뭄이 심한 곳은 태안·서산·홍성 등 서해안지역 고지대와 이원방조제 주변 시험논들이다. 공사가 관리하는 저수지 227곳의 평균 저수율은 19일 현재 31%. 이 중 저수율 40% 미만이 81곳, 제한급수 저수지는 44곳에 이른다. 도내 가뭄 피해면적은 3,600여㏊로 추산되는데, 이 중 논 1,825㏊가 용수난을 겪고 있으며, 700㏊는 모내기를 하지 못했다. 또 모를 낸 논 1,400㏊도 물이 말라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출처: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