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에서 주민들이 갓 정식한 배추가 말라죽는 것을 막기 위해 지하수를 퍼다 뿌리고 있다.
21일 오후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의 ‘안반데기’. 해발 1,100m의 고원지대에 조성된 비탈밭에서 주민들이 가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커다란 물탱크를 실은 트럭은 산 중턱 관정에서 지하수를 받아 계속 농로를 누볐고, 주민들은 수십미터 떨어진 트럭 위 물탱크에 고무 호스를 연결, 말라버린 밭에 물 한방울이라도 더 주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주민 최명순씨(76)는 “지난봄부터 이슬비만 몇차례 내렸을 뿐 비다운 비는 언제 내렸는지 기억조차 없다”며 “가뭄 때문에 올해 농사는 차질을 빚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곳은 전체 경지면적 198만㎡(약 59만평) 가운데, 165만㎡(약 50만평)에서 고랭지 배추를 재배할 만큼 대표적인 고랭지배추 주산지다.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국내 배추의 수급상황을 좌우할 만큼 물가당국에서 관심을 갖는 지역이다. 따라서 이곳엔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자주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는 배추 정식기를 맞고서도 주민들이 작업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다. 주민들은 특히 6월20일경부터 정식에 들어가 늦어도 7월5일까지는 정식작업을 끝내야 출하일정을 맞출 수 있지만 사막처럼 말라버린 밭은 배추모가 뿌리를 내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아 대부분 일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주민 김시갑씨(60)는 “어제 1만약 3만9,600㎡(2,000평) 밭에 배추모 정식을 했는데, 하루 만에 배추모가 말라 버려 궁여지책으로 관정에서 물을 퍼다 뿌리고 살아나기만 기다리고 있다”며 “대부분의 주민들이 정식 날짜를 잡아놓고도 작업을 미룬 채 비만 내리길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그러면서 장마철에는 작업을 할 수 없어 시간이 또 지체된다면 올 농사는 망치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평지에서는 배추도 이모작이 가능하지만 이곳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1년에 단 한차례만 배추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시복 대기4리 이장은 “정식 시기가 늦어져 배추가 뿌리를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장마를 맞게 되면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다”며 “트럭으로 물을 퍼 날라 밭을 적셔서라도 정식에 들어가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강원 평창군 대관령 일대의 고랭지배추는 비교적 생육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관령 일대는 지난 5월 이후에도 간간이 소나기가 내려 다른 고랭지채소 주산지와는 달리 가뭄 피해가 덜하다고 농가들은 입을 모았다. 농가 김중기씨(55·대관령면)는 “지난 5월21일 800m 고지 3만3,000㎡(1만여평)에 배추를 정식했는데, 일부에서 저온과 우박 피해만 입었을 뿐 현재까지는 생육상태가 좋다”며 “앞으로 한 20일 정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조만간 우기가 닥칠 것으로 보여 7월 중하순께 정상적인 출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수희 농협중앙회 채소사업소장은 “영서지방 준고랭지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 여파를 심하게 받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현재까지 고랭지배추 작황이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출처: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