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쌀독이 거의 비었다. 2012양곡연도 말 정부 쌀 재고량은 81만t 수준으로 예상된다. 그중 밥쌀용 국산쌀은 2011년산 5만7,000t뿐이다. 2010년산도 밥쌀로 쓸 수 있지만 정부가 물가안정용으로 마구 풀어 한톨도 남지 않았다. 2009년산 12만t과 2008년산 18만3,000t은 미질이 떨어져 가공용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세계가 식량위기인데 우리는 밥쌀용 국산 쌀이 부족해 큰일이다.
최근의 양곡연도 가운데서도 올해는 최악이다. 양곡연도 말 기준 밥쌀용으로 공급 가능한 국내산 재고는 2007년 45만5,000t, 2008년 26만2,000t, 2009년 28만6,000t, 2010년 43만3,000t, 2011년 37만t(잠정) 등이다. 2012년은 재고가 가장 적었던 2008년에 비해서도 22% 수준에 불과하다. 국산쌀 과잉재고 논란이 불거졌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상황이 180도 바뀌어 국민이 밥그릇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그런데도 양정당국은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올 수확기 공공비축미 매입 물량을 지난해보다 3만t 늘릴 예정이고, 밥쌀용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이 상당량 버텨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매년 군·관수용과 공공용으로 20만t 정도의 신곡을 공급해 왔고 단경기에 민간 수요용으로도 상당량을 푼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한가한 논리를 전개할 처지가 못 된다.
국민의 쌀독이 바닥을 드러낸 것은 양정의 난맥상을 보여 주는 현상이다. 과거 쌀이 좀 남아돌았다고 해서 벼농사를 가볍게 봤다간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올해 들어 국제시장에서 밀 가격은 40%, 콩과 옥수수는 각각 31%와 26% 올랐다. 곡물가격 폭등으로 이미 일부 국가에서 폭동 조짐이 보인다. 그나마 유일하게 자급을 유지했던 밥쌀용 국산쌀마저 식탁에서 사라진다면 식량안보는 무너진 것과 다름없다. 그 결과는 참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