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지연금과 관련, 현장에서 만난 농업인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나타냈다. 이 제도가 농업인들을 생각하는 듯 하면서도 꼼꼼히 따져보면 배려의 흔적이 별로 안 보여서다. 농지연금은 고령농업인에게 농지를 담보로 노후생활자금을 매월 지급하는 제도다. 2011년 도입해 올해 3년째로, 3월 현재 2500여농가가 혜택을 보고 있다. 하지만 가입조건에 제약이 많고, 주택연금에 비해 불리해 ‘속 빈 강정’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제도 도입 취지 못 살려
농지연금을 운영하는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지연금을 운영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해 일본에서도 배우러 온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농촌 현장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불만이 많다.
전남 영암에서 농지 6000여㎡를 담보로 연금에 가입한 박현호씨(82·군서면 월곡리)는 “매달 연금으로 54만원 정도를 받는데, 이것에만 의존하며 생활하기엔 크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전남지역 농지연금 가입농가의 월평균 수령액은 34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지역을 제외한 다른 곳도 전남과 사정이 비슷하다.
농업인들이 농지연금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불만은 담보가치 평가방식이다. 농지연금은 농지의 담보가치를 평가해 매월 지급할 연금액을 결정한다. 그런데 담보가치를 실거래(감정가)가의 50~60%에 불과한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평가해 불만을 사고 있다. 주택연금은 감정가를 기준으로 주택의 담보가치를 평가한다.
담보가치 평가에 대한 현장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최근 정치권 등에서 감정가를 기준으로 하는 평가방식 개선이 추진되고 있지만, 농업인들은 농지연금의 가입조건이나 대출금리 등이 도시민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주택연금보다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주택연금의 경우 가입연령이 만 60세 이상이면 된다. 처음엔 65세였던 것을 지난해 8월 60세로 조정했다. 정부는 또 1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통해 주택연금 가입연령을 50세로 더욱 낮출 방침이다. 반면 농지연금은 부부가 모두 만 65세를 넘어야 가입할 수 있다.
농가들은 이 밖에도 농지연금 가입시 가입비(위험부담금)를 농지가의 2%나 받고, 적용금리도 연금수령액의 4%를 복리로 받아 부담이 크다는 반응이다.
◆실질적 도움되게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농지연금을 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대폭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지연금이 2007년 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농업부문 국내대책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농지연금 설계 당시 앞서 출발한 주택연금을 모델로 삼았으면서도 주택연금보다 불리한 구조를 갖는 것은 농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주택연금의 가입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낮춘 것처럼 농지연금 가입연령도 낮추고, 대출금리도 저금리 기조에 맞춰 낮추는 등 농업인의 체감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경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농지가 거의 유일한 재산인 농업인들에게는 농지연금이 심리적으로 든든한 노후보장책이 될 수 있다”면서 “농지 담보가치 평가방식을 하루빨리 감정가로 전환하고, 가입비와 이자부담 등 부대비용을 줄여 농가가 연금 혜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다문화가정이 늘어 부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인 송재관씨(59·충북 보은)는 “아내와 나이 차이가 10년이나 나는데 농지연금 가입은 부부 모두 65세가 넘어야 한다고 해서 엄두도 못내고 있다”면서 “농지연금 가입기준 연령을 60세 정도로 낮추고, 부부 중 한사람만 기준에 충족하면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그동안 많은 지적을 받아 온 담보가치 평가방식 등에 대한 개선책을 찾기 위해 4월중에 연구용역을 의뢰할 계획”이라면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까지 제도보완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