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농업은 생명, 농촌은 미래 농업인, 소비자와 함께하는 청양군 농업기술센터입니다.

참여마당

없이 살았어도 함께 나눠 먹던 그시절 ‘인정’ 그리워… 글의 상세내용
제목 없이 살았어도 함께 나눠 먹던 그시절 ‘인정’ 그리워…
부서명 청양군농업기술센터 등록일 2013-05-28 조회 1243
첨부  

없이 살았어도 함께 나눠 먹던 그시절 ‘인정’ 그리워…


새참 만들던 할머니들의 ‘추억’

[새참]


포토뉴스

이금자(맨 왼쪽부터)·장옥자·문병임 할머니와 김영희씨가 화기애애하게 옛날 새참 만들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일 모내기 한다면 오늘 저녁부터 잠 안 자고 새참 준비를 했지. 고생? 돌이켜보면 고생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어.”



 전남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꺼낸 ‘새참’은 가난에 대한 기억이었다. 밥 굶기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던 그 시절, 할머니들은 아침식사를 으레 거르는 일꾼들을 위해 오전 10시30분경에, 그리고 점심을 건너뛴 후 오후 3시 무렵에 새참 음식을 제공했다. 음식 가짓수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보리밥에다 반찬은 김치와 감자를 볶은 것 정도였다. 감자와 고구마를 쪄서 가져가거나 팥죽을 쒀서 동이째 이고 가기도 했다.



 “전날엔 반찬을 준비하고 다음 날 새벽에 뜨뜻하라고 국과 밥을 장만했지. 부엌에서 석유곤로 쓰기가 아까워 보릿대를 때서 솥에다 밥을 하곤 했어.”



 이금자 할머니(74)가 꺼낸 추억을 옆에서 듣던 장옥자 할머니(74)도 거들고 나섰다.



 “그때 자욱한 연기로 눈물, 콧물이 나와도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었지 뭐야. 또 요즘처럼 집에 수도가 있었다면 말도 않지. 물이 떨어지면 동네 샘물을 길어오느라 물동이를 이고 살았어.”



 이양청풍농협의 김영자 상무도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나 보다.



 “새참 때 마실 샘물을 주전자로 나르다 더워서 마시고 가면서 흘리다 보면 별로 남지 않았어요. 때로는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르팍이 깨지곤 했죠.”



 할머니들에겐 음식을 나르는 일도 고역이었다. 갓 지은 음식을 담은 대바구니를 머리에 이면 뜨거워서 못 견딘다는 것. 수건을 얹어도 마찬가지여서 손으로 대바구니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논까지 이고 갔더란다.



 새참에서 빠지면 안 되는 막걸리에 얽힌 애환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였다. 당시 집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것은 법으로 금지됐었다. 그래서 이를 조사하기 위해 세무서 직원이 직접 마을을 돌기도 했다.



 “헛간에 막걸리를 숨겨뒀는데 갑자기 직원이 들이닥치더라고. 그때 얼마나 가슴이 벌렁벌렁댔는지…. 무슨 개코라도 가졌는지 냄새로 기가 막히게 찾아내더라니까. 그래서 벌금을 두번이나 냈어.”



 문병임 할머니(72)는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던 새참 풍경이 경제가 발전하고 벼농사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단다.



 요즘엔 중국집에 ‘논 몇번지’라고 전화해 자장면을 배달시키면 그게 새참이 된단다. 과거엔 ‘몸으로 때우던’ 새참이 지금은 ‘돈으로 때우는’ 새참이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함께한 새참 때는 보리개떡 등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다”는 김영희씨(56)의 말처럼 그 시절 새참에 대한 추억은 인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신은 꽁보리밥을 먹을지라도 일꾼들의 밥엔 쌀을 섞었던 그 마음 때문이었다. 없이 살아도 나눌 줄 알았던 인정. 할머니들에게서 들은 새참의 추억이었다.


출처: 농민신문


목록

게시판 이전 및 다음 링크
다음
이전
담당부서 :
기술보급과
연락처 :
041-940-4762
최종수정일 :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