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 그 무렵 아버지가 염소 한마리를 사 와 난 부자가 되는 꿈에 부풀었다. 시간 날 때마다 염소를 끌고 뒷동산에 올라가 풀을 먹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질 무렵 염소는 목에 끈이 감긴 채 죽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는 “염소는 성질이 되다”고만 할 뿐 큰 꾸중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뜻을 후일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을 읽고서야 이해했다. ‘염소는 고집이 세고 성질이 급하다’는 뜻이었다.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엔 양고기와 염소고기의 효능이 거의 비슷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본초강목>엔 ‘인삼은 기운을, 양육은 형태를 보충한다’고 돼 있다. 인삼이나 염소고기 모두 양기를 보호하는데, 염소고기는 몸이 마른 사람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등의 형태까지 좋게 한다는 의미다. 이뿐만 아니라 임산부의 산후 허약증을 다스리는 데도 염소고기가 좋다고 돼 있다. 실제로 임산부가 출산하면 반드시 혈육(피와 살)이 손상되고 후유증이 생긴다. 이때 염소고기는 혈육을 채워서 보충한다.
염소고기의 가장 큰 특성은 인체의 모든 곳에서 양적 힘을 북돋아 준다는 점이다. 특히 시력과 청력, 폐의 호흡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가 있다. 사실 염소의 눈은 초점이 없는 원시다. 하지만 염소의 원시는 먼 풍경을 보는 데 적합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력을 좋게 하는 데는 양의 간으로 만든 ‘양간환’이 좋다고 <동의보감>에 나와 있다.
청력도 마찬가지다. 정월 대보름에 먹는 술이 ‘귀밝이술’이다. 청력은 말 그대로 귀를 전깃불처럼 밝히는 힘이다. 귀를 전깃불처럼 밝히는 힘을 북돋는 대표적인 약이 양신(羊腎) 즉, 양의 콩팥이다. 오랫동안 청력이 떨어진 사람에겐 대표적인 청력회복 처방인 ‘자석양신환(磁石羊腎丸)’을 쓴다.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민간처방도 있다. 500g 안팎의 자라와 양고기 250g 정도를 함께 끓여 먹으면 이명이나 저하된 청력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폐가 나빠 호흡에 지장을 겪는 사람에게 쓰이는 대표적 처방도 양폐탕이다.
더운 여름, 찬 것을 많이 먹어 소화가 잘 안 되고 기력이 떨어진다면 염소고기로 보양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