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26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열린 대아청과㈜의 배추 정가·수의매매 시연회. 이날 행사에선 책정된 가격을 놓고 유통주체간 이견이 표출되는 등 소동이 일면서 정가·수의매매의 안착을 둘러싼 시사점을 남겼다.
최근 서울 가락시장 등에서 만난 유통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가·수의매매 활성화 의지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정가·수의매매가 1991년 농산물의 상장경매 의무화, 1994년 농안법 파동에 따른 중도매인의 거래제도 개선, 1998년 전자경매 실시에 따른 투명성 제고 등과 맞먹는 파급력을 지녔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농산물의 도매시장 집하에 따른 물류 비효율성, 가격의 지나친 급등락 등 경매제의 단점이 상당부분 해소된다는 점에서 도매시장의 운영 패러다임(틀)이 이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시장 현실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6월26일 가락시장 대아청과㈜가 마련한 배추의 정가·수의매매 시연회다. 이날 시연회에는 경북 상주에서 출하된 배추 5t 트럭 한대분이 정가·수의방식에 의해 10㎏들이 한망당 3800원에 판매된 과정을 놓고 작은 소동이 일었다. 평소 배추를 출하하던 경기지역의 산지유통인 박모씨가 이날 책정된 가격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
박씨는 “이 정도 품질의 배추라면 오늘 경매를 통해 한망당 4000원 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는데, 정가·수의매매를 하면서 산지만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심지어 그는 “경매사와 중도매인이 담합을 통해 배추 가격을 고의로 낮게 책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박씨의 항의는 행사를 준비한 대아청과와 한국신선채소협동조합측에서 가격 결정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더 이상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행사에 참여한 산지와 시장 관계자 모두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가·수의매매 활성화를 위해선 출하농가에 대한 홍보와 함께 중도매인 등 시장 유통주체의 의식 전환을 위한 보다 세심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가·수의매매의 경우 산지와 시장 관계자가 서로 합의한 가격으로 꾸준하게 거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책정된 가격이 경매 시세보다 높거나 낮을 수 있어 출하주들이 해당 거래가격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정가·수의매매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출하농가를 상대로 한 홍보와 교육프로그램이 사전에 마련되지 않고서는 제도 정착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지 대량 수요처 발굴 등 중도매인들의 분산 능력을 높이기 위한 청과도매법인의 노력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영덕 농협안산공판장장은 “소속 중도매인들의 주 판매처가 소형 트럭을 몰며 행상을 다니는 도붓장수이거나 소규모 동네슈퍼인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들의 정가·수의매매 참여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천호진 농협가락공판장 본부장은 “농산물 유통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경매사들이 제도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해 왔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소비지의 수요에 맞는 산지의 출하처를 발굴할 수 있도록 경매사의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주 농협경매사발전협의회장은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와 공선출하회를 중심으로 한 정가·수의매매 우선 도입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도매인의 인식 개선도 시급한 것으로 꼽힌다. 수도권의 한 농협공판장장은 “대형 중도매인들이 정가·수의거래 참여를 빌미로 수수료를 낮춰 달라는 요구를 공공연하게 해 곤란할 때가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가락시장의 한 경매사는 “정가·수의매매는 특정 산지가 출하하는 농산물을 선취하는 형태를 띠는 까닭에 거래에 참여한 중도매인과 그렇지 못한 나머지 중도매인간에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중도매인간 갈등 방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밖에 일부 공영도매시장의 청과도매법인의 경우 정가·수의 거래비율을 높이려는 데만 골몰한 나머지 취급이 손쉬운 수입 농산물을 정가·수의방식으로 대거 거래하는 일이 늘고 있어 이를 규제하는 것도 과제로 꼽히고 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