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의 오랜 숙제인 쌀시장 관세화 문제가 주요 농정 현안으로 부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13일 쌀 관세화 관련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20일에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이 주최하는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린다. 여기에 정부는 민관합동기구인 ‘쌀산업 발전 포럼’을 최근 발족시키고 연말까지 관세화 전환 여건을 점검할 계획이다.
◆2차 관세화유예 종료 다가와
정부와 국회가 쌀 관세화 논의에 불을 지핀 이유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에서 1995년부터 10년간 쌀시장 개방을 미뤘다. 2004년에는 쌀 재협상을 통해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는 대신 개방 시기를 10년 더 연장했다. 내년 말이면 추가연장 기한이 종료된다.
정부는 개방 시기를 더 미룰 경우 의무수입량을 추가로 늘려줘야 하기 때문에 2015년에는 쌀 관세를 정하고 쌀시장을 개방하는 게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학계도 대체로 정부 입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두봉 고려대 교수는 “관세화를 또 미룬다면 의무수입량을 더 늘려야 한다”며 “비록 시간이 촉박하지만 될 수 있으면 올해 결론을 내고 내년부터 관세화를 단행하는 게 농가에 훨씬 유리하다”고 했다.
이에 반해 전국농민회총연맹과 같은 진보단체는 “UR 농업협상의 후속인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는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채 의무수입량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장경호 녀름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부소장은 “DDA 협상 타결 전까지는 스스로 관세화로 전환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고, 새로운 추가조치를 확대하기 위한 재협상도 벌이지 않는 현상유지가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현재로선 관세화 전환론이 우세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자유무역협정(FTA)과의 관계가 불명확하다. 정부는 쌀 관세화는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문제며, FT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쌀 관세가 정해지면 미국이 한·미 FTA에서 예외품목으로 뒀던 쌀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또 ‘한·중 FTA 협상에서 중국이 쌀을 공략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 농정당국이 강하게 추진했던 조기관세화는 통상당국의 제동으로 흐지부지됐다. 당시 통상당국은 ‘한·미 FTA 국회비준 전에 관세화 논의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내적인 준비도 아직 미흡하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은 “쌀시장이 개방되면 100% 완전미가 수입될 텐데, 과연 우리 현실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익재 전북 새만금농산 대표는 “우리쌀은 밥맛을 떨어뜨리는 동할미(금간 쌀)와 쇄미(싸라기) 비율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수입쌀 둔갑유통이 성행하지만, 단속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태호 서울대 교수는 “쌀 직불금을 면적이 아니라 고품질 쌀농가에게 돌아가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가 관심 저조
관세화 전환에 대한 정부 의지가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관세화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하면서도 관세화의 핵심인 쌀 관세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는다. 상대국에 미리 우리 패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쌀 관세는 우리가 WTO 협정문에 나온 공식에 따라 정해서 WTO에 통보하고, 이후 이해당사국과 협상을 벌인다”며 “따라서 쌀 관세가 1급 비밀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농가들한테 대략적인 관세도 알려주지 않은 채 관세화 전환 유불리를 택하라고 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농가 홍보도 미약한 편이다. 농경연이 최근 쌀 표본농가 1282명을 대상으로 관세화를 물었더니 447명(34.9%)은 “관세화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다. 충남 예산에서 30㏊ 규모의 벼농사를 짓는 박진수씨는 “정부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데, 일선 농가들이 어떻게 관세화란 걸 알겠냐”며 “관세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농업인 비율이 농경연 조사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쌀전업농인 정태근씨(경북 구미)는 “관세화로 가려면 쌀 목표가격 인상과 같은 농업인 소득안정 대책이 중요하다”며 “그렇지만 목표가격 논란에서 보듯 정부의 관세화 의지가 높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