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위 공무원 출신이지만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귀향해 이장을 맡고 있는 이준화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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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 농정과장, 거창군 부군수, 통영시 부시장, 진주시 부시장…. 이 정도 이력이면 지방 정치권으로부터 꾸준히 ‘입질’을 받을 만도 한데, 그는 모든 것을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동네 이장을 맡았다. 바로 이준화 이장(65·거창군 주상면 내오리 오류동)의 얘기다.
“귀향해 조용히 농사지으며 살고 싶었는데, 마을에 이장 할 사람이 없으니 어쩝니까. 고위 공무원을 역임한 사람이 뭐 할 일이 없어서 이장을 맡느냐는 둥 연금 받고 편히 살지 왜 사서 고생이냐는 둥 말도 많았지만,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에 다른 생각은 다 접고 충실한 마을의 일원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이 이장이 이장직을 수락한 건 1월. 2008년 진주 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친 그는 평소 소망했던 대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 오류동은 연안이씨·영천이씨 집성촌으로, 거창군에서 양반골로 소문난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다른 농촌과 마찬가지로 이농과 고령화에는 예외가 없어, 지금은 27가구 48명에 70대가 주축을 이루는 쇠락한 마을이 되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니 자연스레 그나마 젊은 그가 총대를 메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좋아했지만,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는 난리가 났었지요. 자신들이 모시던 이가 말단 이장이 됐으니 얼마나 껄끄럽겠어요. 그래서 면에 나가도 면장실 근처에는 얼씬도 안하고, 농업기술센터 영농교육을 받을 때도 맨 뒷자리에 숨어서 강의를 듣습니다.”
이 이장은 “거창 부군수로 있을 때보다 신경이 두배로 더 쓰인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여느 이장들과 달리 이장직 수행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지만, 마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기에 그는 누구보다 이장일에 열심이다. 아저씨·형님뻘인 주민들의 농협(거창북부농협·조합장 신화범)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마을 의견을 수렴할 때도 발품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이장이 된 후 마을의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의 참여의식이 높아진 것. 마을정비·영농의향조사 등 각종 회의 때 모두의 의사를 존중하며 민주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다 보니 주민들의 관심과 자발성이 부쩍 늘었다. 이렇게 소통구조가 원활해진 결과 올봄에는 마을 진입로를 말끔히 단장할 수 있었고, 여름에는 군으로부터 건강체조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받았다.
이 이장은 요즘 논·밭 농사 외에 친환경 양계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춥고 외진 동네라 가을걷이 후에는 수입이 전무하기에 유정란 생산을 통해 새 소득원 창출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일단 올해는 자신이 시범적으로 해보고 전망이 보이면 마을 전체로 보급할 계획이다.
“풍요롭고 잘사는 마을로 가꿔야 젊은 사람들이 오고, 이장 할 젊은이들이 들어와야 나도 이 짐 편히 내려놓지요.” 한창 이장일에 맛을 들인 이 이장의 투정 섞인 바람이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