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기존 TPP 참여국이 우리나라에 농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칠레의 공세가 거셀 것으로 예상돼 TPP 참여에 앞서 이에 대한 영향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3~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9차 각료회의와 7~10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TPP 각료회의에서 TPP 참여 12개국 중 9개국과 ‘예비 양자협의’를 진행했다. 이 협의에서 9개국 모두 우리의 TPP 참여에 대해 ‘환영’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협상 참여준비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TPP 참여 승인권을 쥔 상대국들이 반대 급부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우려되는 나라는 미국. 외신에 따르면 태미 오버비 미국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11일 “한·미 FTA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는 TPP에 가입하는 무임승차권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통상압력을 예고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TPP 참여 전제조건으로 오렌지 등에 대한 원산지 증명기준 완화, 유기농 제품 인증기준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을 촉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칠레도 우리 시장의 추가 개방을 벼르고 있다. 한·칠레 FTA의 농산물 개방 수준이 한·미 FTA 등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칠레와 2002년 FTA를 맺으면서 첫 체결이라는 부담 등으로 농산물 개방 수준을 낮게 설정했다. 특히 1432개(HS 10단위 기준)의 농축산물 가운데 391개(27%)에 대해서는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끝난 뒤 개방 수준을 정하기로 했다. 쌀·사과·배 등 21개는 아예 양허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2004년 타결이 예상됐던 DDA 협상이 계속 늦어졌고, 그 사이 우리는 미국·유럽연합(EU)·아세안 등과 잇따라 FTA를 체결하면서 농축산물 시장을 칠레보다 더 많이 개방했다. 이에 칠레는 2009년부터 추가 협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TPP 참여는 칠레 입장에서 우리 농축산물 시장을 추가로 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우리나라 산업계의 이해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한·칠레 FTA 체결 당시 우리가 391개 품목의 개방을 DDA 이후로 연기함에 따라 칠레도 냉장고·세탁기를 개방하지 않았다. 이후 중국·칠레, 일본·칠레 FTA가 체결되면서 중국·일본산 가전제품이 우리보다 더 좋은 조건에 칠레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가 TPP에 가입할 때 한·칠레 FTA 시장 개방대상에서 빠진 사과와 배는 물론 감귤·바나나·오렌지·파인애플 등 열대성 과일, 대부분의 주요 채소 등에 대한 추가 개방 부담이 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런데도 TPP 참여에 따른 농업 분야 피해를 계량화한 분석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TPP 참여가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적·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