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는 ‘알프스마을’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충남의 알프스’ 청양 땅에서도 응달진 산골짝에 자리해 한번 눈 오고 얼음 얼면 좀체 녹질 않는다. 거참 지긋지긋하겠다 싶은데, 이 마을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겨우내 잔치를 벌인다. 올해 6회를 맞는 ‘칠갑산 얼음분수 축제’가 그것이다. 맞다. “콩밭 매애는 아아나악네에에야~” 하는 그 노래 속 칠갑산이 이 마을 뒤편을 두르고 있다.
알프스마을에 닿은 시간은 오전 9시 남짓. 잔칫집 찾기에는 이르다 싶어 걸어서 20분쯤 떨어진 천장호 출렁다리 휴게소부터 둘러봤다. 길이 207m로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가 칠갑산 산등성이에 자리한 천장호를 가로지르는 곳이다. 다리에 올라서니 좌우로 출렁이는 데다 중간중간 투명한 구간이 있어 걸음이 더뎌진다.
건너편에 닿아 잘 닦인 산길을 오르니 영험하다는 소원바위가 나온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웃 목면에 사는 유 아무개 할머니도 이 바위에 치성한 끝에 지난해 10월29일 건강한 손주를 얻었단다. 바위를 두른 금줄에는 온갖 소원을 품은 흰 종이가 빼곡히 꽂혀 있다. 건강, 행복, 사랑, 합격, 취업 그리고 로또…. 소원성취함에 비치된 흰 종이를 한장 집었다 도로 놓았다. 한장으론 모자라지 싶었다.
아무튼 여기서 칠갑산 정상까지는 3㎞ 남짓. 눈 덮인 산길을 눈으로 좇아 정상까지 올려다보곤 발길을 돌렸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휴게소를 어슬렁거리다 마을에 닿으니 이제 잔치 분위기가 제법 난다. 평일인데도 방학을 맞은 자녀와 함께 찾은 방문객이 벌써 수백명. 지난해 축제 때는 18만 명이 찾았다는 게 노승복 마을사무장의 이야기다.
“일부 시설을 빼고는 모두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운영하니 좀 촌스럽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맛이죠. 할아버지가 끄는 소썰매도 타고, 장작불에 밤도 구워 먹고, 어른들은 빙어 낚시도 하고….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 푹해서 걱정이네요.”
칠갑산 얼음분수축제는 이 마을 100명 남짓한 주민의 절반이 참여해 꾸린 영농법인 ‘알프스마을 운영위원회’가 주최한다. 충남을 대표하는 겨울 축제로 자리 잡았지만 사무장 말마따나 흘끗 보기에는 별것 없다. 마을 어귀의 얼음분수, 골짜기에 마련된 빙어낚시터, 그 옆의 눈조각과 얼음조각, 곳곳의 눈썰매장과 얼음봅슬레이장, 하우스 안에 꾸려진 먹거리장터 등은 볼품으로 따지자면 유명 리조트나 대형 축제장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런데 여길 하루 최대 1만 명이 찾는다고? 그 이유를 알려면 직접 나설 수밖에. 겸연쩍음을 무릅쓰고 꼬맹이들과 나란히 눈썰매장 대기줄에 선 게 그래서다.
“꺄아악! 나 또 탈래!” 이건 꼬맹이들이 아니라 기자의 입에서 터져나온 함성이다. “어, 어, 어… 우하하하하하!” 이건 얼음봅슬레이에 엉덩이를 대자마자 절로 나온 소리다. 이 재미난 걸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이 따윈 잊고 꼭 도전해 보시길.
날이 덜 추워 걱정이라는 노 사무장의 이야기에 몰래 입술을 삐죽거린 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속으로 빌었다. 하늘이여, 다른 덴 몰라도 애들 노는 데만큼은 시루떡 같고 솜사탕 같은 눈 듬뿍 뿌리소서. 돌아보니 내 어릴 적에도 소원은 그거 하나였나이다. ※올해 칠갑산 얼음분수축제는 2월9일까지 열린다. 홈페이지 www.alpsvill.com, 문의전화 ☎041-942-0797.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