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대목을 맞아 서울 가락시장 과일 경매장에 출하된 과일들이 쌓여 있다.
◆과일, 물량 많아 가격 하락=설 단대목이지만 주요 품목인 사과·배 거래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 가락시장 유통인들에 따르면 사과·배는 지난해보다 15% 안팎 시장반입량이 늘었다. 하지만 소비가 위축되면서 재고가 경매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천호진 농협가락공판장 본부장은 “매일 새로 들어오는 사과·배 물량은 넘치는데 전날 재고가 경매장에 가득 쌓여 있어, 하차 작업조차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오전 9시를 전후해 시작돼야 할 사과·배 경매가 오후 3시 넘어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판매되지 못한 과일 재고가 경매장을 차지하면서 감귤 등 일부 품목은 아예 경매장 바깥 주차장에서 하역과 경매를 해야 하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과·배 등 주요 과일 가격은 지난해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가락시장에서 사과는 상품 5㎏들이 한 상자(14~16개들이)가 지난해보다 20% 이상 하락한 1만7000~2만5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그나마 물량이 적어 시세가 높았던 대과(13개들이 이하)도 5만원 이상 가격에 거래되다 최근에는 4만원대로 주저앉았다.
배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상품 7.5㎏들이 상자당 평균가격이 1만50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강세를 보였던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고, 평년의 7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다만 단감의 경우 올해 산지 생산량 감소로 지난해보다 10%가량 오른 2만5000원 선(10㎏들이 한 상자)에 거래되고 있다.
이영신 가락시장 중앙청과㈜ 전무는 “이번 설대목장에서 과일은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이를 따라주지 못해 어려움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차라리 출하중간에 하루 이틀 출하를 중단하는 것이 산지에는 오히려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들, 예약판매 늘어 기대감 높아=상대적으로 도매시장보다 명절 거래가 활발했던 유통업체들도 올해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농협 판매장의 경우 1월 세번째 주말인 19일까지는 평균 주말장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져, 설 열흘 전인 21~22일부터 본격적인 매기가 불 붙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대부분의 택배업체들이 26일을 마감일로 정한 만큼 대량 택배고객들은 넷째주 주말인 24~25일께 막바지 구매에 나서고, 제수용품을 구매하는 고객인 이른바 ‘개미군단’들은 27~29일 구매가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노정석 농협 농산물도매분사 청과사업단 과일부장은 “장 초반인 20일 현재 소비 흐름을 딱히 규정할 수 없지만 사과와 배만 본다면 배쪽에서 소비가 먼저 움직이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며 “배값이 지난해에 비해 15% 이상 하락해 가격이 낮아졌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이 먼저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18~19일 전후로 매장에 선물세트 전용 판매대를 꾸리는 등 매출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설 대목 이전에 실시한 예약 판매 실적이 기대 이상 올랐다며 이를 소비 확대와 연계하려는 홍보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가들은 가격에 대한 지나친 기대심리보다는 설 대목기간 중 꾸준한 분산 처리를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추석에도 대목장 초반에는 소비가 살아나지 않다가 막바지에 소비가 늘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설 대목장을 끝까지 보고 출하 전략을 세우는 자세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채소류 소비 부진에 ‘신음’=채소류는 호박·고추 등 일부 과채류 품목을 제외하면 과일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배추·무·마늘·양파 등 주요 품목은 물론이고 시금치 등 제수용 수요가 많은 나물류 등도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배추는 앞으로 산지 기상여건(기온하강·강설)에 따라 가격 등락이 발생할 수 있지만, 겨울배추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많아 현재로선 가격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가락시장에서 상품 10㎏들이 한망이 3800~4100원으로 지난해 같은때 9100원과 비교해 45%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무도 배추와 마찬가지로 올해 생산량 증가 탓에 18㎏ 한묶음이 현재 4700원대로, 지난해 9800원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양념채소류인 양파와 대파 등도 가격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양파 상품 1㎏이 750~760원으로 지난해 설대목때 가격 1500원의 절반 수준이다. 대파도 상품 1㎏이 850~870원으로 지난해의 60% 가격이다.
제수용 등으로 명절 수요가 많은 시금치 등 나물류 가격도 아직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시금치는 가락시장에서 상품 500g 한 단 가격이 500~600원으로 지난해 설대목 때의 절반값이다. 다만 시금치는 낮은 기온과 흐린 날씨 등으로 전남 신안, 경북 포항 등 남부지방의 노지 재배분 출하가 지연돼 시세 상승이 예상되고 있다.
서정관 가락시장 동부팜청과㈜ 경매사는 “시금치 등 나물류는 보통 명절을 바로 앞둔 시점에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지금은 약세를 보여도 점차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영주 농협공판장 채소팀장은 “요즘처럼 소비부진으로 시세가 약세를 보일 때는 선별을 보다 균일하게 하고 중량을 철저히 지키는 등, 물량 위주의 출하보다 상품성 관리를 엄격히 하면서 수취가격을 높이는 출하전략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