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 오등동 한천저류지에서 고사목이 대량으로 소각되면서 희뿌연 연기가 자욱하다. 제주도 전역에서 베어진 고사목은 홍수 예방 시설인 인근 저류지에서 소각 또는 파쇄처리되고 있다.
고사율 100%.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에 공격당한 제주도 전역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18일 기자가 방문한 제주시 조천읍의 한 고사목 제거 현장에는 전기톱 소리가 요란했다. 20m를 훌쩍 넘는 소나무가 ‘우지끈’ 굉음을 내며 쓰러지자 작업자들은 익숙한 듯 다른 고사목을 찾아 재빨리 이동했다. 이날만 40그루가 넘는 소나무를 베어냈다는 한 벌목공은 “한마디로 전쟁입니다, 전쟁. 아무리 베어도 끝이 안나요”라며 작업을 서둘렀다.
피해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육지와 달리 제주도는 사실상 전역이 피해 지역이다. 소나무 숲(1만6284㏊)이 제주 전체 산림면적(8만8874㏊)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데다 주민 생활권 깊숙한 곳까지 소나무가 자리잡은 탓이다.
문화재 보호구역과 관광지도 재선충병을 비켜가진 못했다. 제주도 조사결과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82호)인 효례·하례천 일대와 세계자연유산인 만장굴 주변 소나무 숲도 이미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소나무가 잘려나간 황량한 경관은 관광지인 제주도에 치명타를 줄 수 있어 방제 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잘려나간 고사목만 벌써 22만6000여그루. 그래도 아직 8만9000여그루의 고사목이 더 남아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제주 재선충 방제의 핵심이다.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번식 장소가 죽은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정규원 한국산림기술사협회 부회장은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재선충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면서“‘매개충’을 잡기 위해 고사목을 제때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유충이 깨어나는 시기는 5월이다. 그때까지 고사목을 처리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소나무가 또다시 피해를 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제주도가 ‘4월 말까지 모든 고사목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창조 제주도청 산림녹지과장은 “앞으로 두달 동안 도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것”이라며“무슨 일이 있어도 3월 말까지는 모든 고사목을 제거하고 4월 중으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제주도는 지난해 총 216억원에 이어 올해도 103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더욱이 올해는 육지의 방제 전문인력(전국 25개 산림조합)까지 제주도에 총집결한 상태다. 제주도가 재선충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