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비육돈 구제역 항체 형성률이 44.8%로 형편 없이 낮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제역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전염될 수 있는 만큼 축산농가들이 보다 철저히 백신접종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협○○지역본부 축산사업팀장 A씨는 요즘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정부의 위탁으로 농협이 전업농가 이상의 소·돼지 사육농가에게 구제역 백신을 공급하고 있는데, 유독 양돈농가들이 백신 구입을 꺼리는 탓이다. 지난해엔 이 지역 양돈농가에 대한 백신 공급률을 가까스로 50% 이상 넘겼지만 올 1월에는 이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구제역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전염될 수 있고, 돼지는 소에 비해 감염 민감도가 수십배나 높아 혹시라도 올해 돼지를 통해 구제역이 재발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 같다”고 말했다.
◆항체 형성률은 이미 ‘위험수위’=지난해 소의 구제역 항체 형성률은 전국 평균 97.4%로 2012년 98.5%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돼지의 항체 형성률은 전국 평균 60.4%(2012년 59.5%)로 소에 비해 크게 낮았다. 문제는 같은 돼지라도 지난해 번식돈(모돈)은 80.1%의 항체 형성률을 보인 반면 비육돈은 44.8%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축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돼지 사육마릿수는 991만2000마리인데, 이 중 모돈은 89만5000마리(9%)에 불과하다. 이는 극소수인 모돈에만 백신을 접종하고 사육마릿수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비육돈엔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는 해석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올 1월 한달 동안 돼지 428마리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번식돈의 항체 형성률은 83.7%에 달했지만 비육돈은 51.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영환 농협중앙회 방역위생팀장은 “전국 130개 축협을 통해 전업농가를 대상으로 구제역 백신을 공급하고 있는데, 지난해 공급률이 소는 82%, 돼지는 69%에 그쳤다”며 “특히 비육돈 사육농가에 대한 백신 공급률은 더욱 낮아 각 지역본부를 통해 백신공급을 독려하고 있지만 농가 반응은 요지부동”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느슨해진 방역의식이 문제=2011년 4월 구제역 사태 종식 이후 2년 이상 구제역이 재발하지 않으면서 지자체와 축산농가들의 방역의식이 느슨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구제역 관련 방역의무를 위반해 과태료를 받은 농가가 지난 2012년(7~12월) 16건에서 2013년 174건으로 대폭 늘어난 점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정부는 농가가 사육 중인 소·돼지에 대한 혈액검사를 통해 항체 형성률이 기준치(소 80%, 번식돼지 60%) 미만일 경우 50만~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구제역 백신 접종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이 매듭지어지지 않고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도 항체 형성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육돈에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면 그 부위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 상품성이 떨어지고, 항체 형성률도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게 원인이라는 것.
대한한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 대형 육가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48%에서 이상육 현상이 나타났다. 협회 관계자는 “이상육 발생으로 잘라내는 고기가 한해 1만1000t, 가격으로는 1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경남 창녕의 한 양돈농가는 “현실적으로 이상육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백신과 관련된 것은 아닌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이상육 문제를 농가에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돌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돈협회는 또 전문가 연구 결과 비육돈에 백신을 접종해도 항체 형성률은 평균 50%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방역당국과 축산전문가들은 한돈협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백신 효과가 떨어지고 이상육이 발생하는 것은 축산농가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주사를 놓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립축산과학원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11년 두 기관이 공동 조사한 결과 백신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설명했고, 한돈협회도 2011년 자체적으로 실시한 구제역 백신 이상육 발생에 관한 연구에서 이상육 발생의 주요 원인이 농가들의 잘못된 백신접종 방식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구제역 백신 접종 후 전국적으로 구제역 발생이 멈췄고, 추가 발생이 없다는 것은 백신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 지역축협 동물병원장은 “백신을 접종하면 이상육이 생긴다는 소문이 논란을 일으키고, 이런 사실이 여과없이 퍼지는 동안 농가들의 구제역 방역 의식은 허물어졌다”며 “하루빨리 구제역 백신에 대한 논란이 정리되지 않으면 또 한번 큰 홍역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에서는 농가들이 구제역 백신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양돈농가(전업농 이상)들이 구제역 백신을 구입하려면 국고보조 50%를 제외하고도 한마리당 1000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비육돈 10만마리를 사육하는 농가의 경우 출하할 때까지 백신 구입비만 1억원 정도 드는 셈이다.
◆구제역 재발 위험성 높아=농식품부는 2011년 4월 경북 영천을 마지막으로 구제역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자 지난해 10월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구제역 백신접종 청정국 심사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OIE는 3월 중에 국내 소·돼지의 구제역 항체 형성률 등을 검사해 5월 중 청정국 여부를 최종 판정할 예정이다.
방역당국은 OIE 심사에서 백신접종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OIE의 구제역 백신접종 청정국 인증 요건에는 ‘항체 형성률 80% 이상 유지’로 돼 있지만 돼지의 경우 비육돈 항체형성률은 인증 요건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라는 게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비육돈에 대한 백신접종을 소홀히 할 경우 구제역 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변국에서 구제역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어 해외 여행객이나 수입건초 등을 통해 얼마든지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 대부분이 아시아 지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방역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올 들어 2월 말까지 구제역이 발생한 주변국은 북한·러시아·몽골·중국·베트남·미얀마·태국·라오스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방역전문가는 “모든 돼지가 구제역 백신을 맞은 상태에서 구제역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감염 확산의 우려가 적지만 반대로 모돈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한 상태라면 나머지 돼지들이 감염될 확율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