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천안의 토종벌 농가 전상돈씨가 정부 보급 개량벌통의 규격을 현실에 맞게 단일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씨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규격이 다른 개량벌통의 소초광을 각각 들어보이고 있다.
“신기술 보급사업도 좋지만 현장 농가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원 홍천에서 20군 규모로 토종벌을 사육하고 있는 황영복씨(52)는 요즘 들어 밤잠을 설치고 있다. 지난 5년간 낭충봉아부패병 피해로 30군의 벌통을 잃은 황씨는 올해 농촌진흥청의 토종벌 개량벌통 보급 사업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개량벌통 구입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황씨는 “정부에서 토종벌을 살리기 위해 개량벌통을 개발해 보급한다고 해서 재기할 꿈을 꿨다”며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규격도 여러 가지인데다 사려고 해도 벌통이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농진청에서 기술 이전한 업체의 견적서를 받아보니 벌통 한개당 10만원이 훌쩍 넘었다”며 “증식을 하려면 올해에만도 70~80개의 벌통을 새로 구입해야 하는데 신기술을 이전받은 업체의 단가대로만 한다면 벌통구입비만 1000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같이 상당수 토종벌 사육농가들은 농진청의 토종벌 개량벌통 보급사업이 현장 농가의 실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가들은 가격도 그렇지만 농진청에서 시범보급하고 있는 개량벌통의 더 큰 문제는 서로 다른 규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농진청이 2곳의 업체에 개량벌통 제조 기술을 이전했는데 기술 이전 업체마다 규격이 다른 것. 여기다 전국의 나머지 4곳의 토종벌 벌통 제조업체가 자체 제작해 공급하는 개량벌통 역시 규격이 제각각이다. 이에 따라 벌통간 서로 호환이 불가능해 사용이 불편하고 특히 이러한 개별 규격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 개량벌통의 단가를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농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충남 천안의 토종벌 농가 전상돈씨(52)는 “개량벌통을 공급하는 업체마다 규격이 제각각이어서 혼란스럽다”며 “여러 가지 규격의 벌통이 유통되면 나중에 이웃농가로부터 분봉을 받거나 자체 증식하는 과정에서 별도로 벌통을 구입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에서 한 가지 규격으로 통일해 보급했다면 대량 생산이 가능해 농가 보급 단가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농진청의 토종벌 개량벌통 보급사업은 일부 시범사업 농가를 제외하고는 값비싼 벌통 구입비와 규격의 호환성 문제 등으로 대다수 농가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한봉협회가 최근 토종벌 농가로부터 의견수렴을 받아 자체적으로 단일화된 개량벌통 규격안을 마련, 회원 농가와 업체들에 공지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현장과 따로 노는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김미연 한봉협회 사무국장은 “정부에서 개량벌통을 만든 목적이 농가에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인데 실제 현장에서는 규격도 다양하고 단가도 높아 농가들이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농가와 협회에서 목소리를 높여 규격 단일화와 보급단가 인하 방안을 수차례 농진청에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아 결국 농가들이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농진청 관계자는 “농가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향후 개량벌통을 개선하는 데 반영하려고 검토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