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콩 파종기를 앞두고 콩 재배농가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콩농사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품목으로 갈아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콩 주산지농협 역시 올해 수매계획을 어떻게 짤지를 놓고 말 못할 고민에 빠졌다. 이는 모두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성장위)가 콩을 주요 원료로 사용하는 ‘두부제조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우려했던 부작용이 국내 콩산업을 질식시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콩 재배농가와 생산자단체는 물론 농림축산식품부까지 나서 동반성장위의 잘못 끼운 단추 하나가 국내 콩 생산기반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업계 안팎에서는 동반성장위가 11월 재지정할 예정인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두부제조업을 제외하겠다는 결정을 콩 파종기 이전에 매듭지어 국산콩 생산 및 소비기반을 재구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위협받는 콩 생산기반=우리나라의 콩 연간 소비량은 약 140만t이다. 사료용이 96만t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44만t 정도가 식용이다.
사료용을 포함한 콩의 전체 자급률은 9% 정도에 불과해 세계 10위권의 콩 수입국이기도 하다. 식용콩은 국내 생산량이 14만t 수준으로, 자급률이 30% 선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열악한 콩 자급기반 제고를 위해 농식품부는 콩 자급률을 2020년까지 4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설정과 함께 다각적인 ‘국산콩 적정 생산 대책’을 마련해 추진중이었다. 콩이 국내 양곡 소비량 가운데 쌀과 밀 다음으로 세번째로 많은 데다 전통식품인 장류의 주요 원료라는 점에서 콩산업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뜻하지 않은 동반성장위의 ‘두부제조업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에 가로막혀 순항중이던 정부대책이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국내산 콩의 주요 사용처인 대기업이 수매량을 지속적으로 줄이면서 국내산 콩의 판로가 막힌 농가들이 콩 재배를 포기하는 사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국립종자원의 콩 보급종 신청·공급 현황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4월 말 현재 콩 보급종 신청·공급량 현황을 보면 공급가능량 1491t 중 70% 수준인 1056t에 그쳤다. 예년 이맘때면 계획된 양이 거의 소진됐지만 올해는 농가들의 재배의욕 저하로 신청량이 뚝 떨어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충북 괴산에서 30년간 콩 농사를 지어온 장흥석씨(60·청천면)는 “지난해 2만9700㎡(8984평) 규모로 콩농사를 지었는데 콩값이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폭락해 큰 손해를 봤다”며 “올해도 사정을 장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콩 재배면적을 지난해의 30% 수준인 9900㎡(2994평)로 줄이고 나머지 밭에는 옥수수를 심었다”고 말했다.
김중기 경북 서문경농협 조합장은 “백태(흰콩)의 경우 값이 크게 떨어진 데다 재고량이 많아 문경지역의 콩 재배가 20~30%가량 크게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문경지역은 봄배추·옥수수·담배 후작으로 6월 하순~7월 초순 콩을 파종하는데 분위기가 싸늘하다”고 전했다.
성명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전반적인 두부산업 현황을 봤을 때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올해 32% 수준인 식용콩 자급률은 2019년에는 24.6%, 2024년에는 23.2%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나=동반성장위가 2011년 두부제조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콩 재배농가에 미칠 악영향을 간과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동반성장위가 콩 재배농가나 생산자단체를 두부제조업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과정에서 배제함으로써 콩산업에 미칠 부작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남량 농협중앙회 양곡사업부장은 “국산콩 사업은 원래부터 대기업만이 뛰어들었던 사업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경쟁관계가 아니었다”며 “국산 두부 제조업의 적합업종 지정은 애초부터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강조했다.
조영제 국산콩생산자연합회장은 “두부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뒤 국산콩 대부분을 사들이던 대기업이 2011년 1만4216t에서 2012년 1만2682t, 2013년 1만1600t으로 매년 국산콩 수매량을 줄여왔다”며 “동반성장위가 대기업에 두부 관련 사업의 확장을 자제하라고 하고 신규진입을 제한하고 있으니 국산콩 두부산업이 더 위축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 회장은 특히 “두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아니었던 2011년엔 국산콩 공급이 대폭 감소해 국산콩 값이 크게 상승했는데도 사용량은 전년대비 2.3% 증가했다”며 “하지만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뒤인 2012년에는 국산콩 공급이 대폭 증가해 값이 크게 떨어졌는데도 국산콩 사용량은 오히려 6.7% 감소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책은=농식품부와 농협, 생산자단체, 콩 재배농가들은 한 목소리로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두부제조업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콩 파종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11월까지 중소기업적합업종 재지정을 미룰 게 아니라 5~6월 중이라도 재지정 철회를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훤 농식품부 식량산업과장은 “동반성장위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취지는 경쟁관계에 있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사업영역을 구분해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국산콩 두부산업은 애시당초부터 대기업만의 영역이었지 중소기업과 경합되는 사업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두부제조업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이후 대기업의 국산콩 수매가 줄고 중소기업은 외국산 원료만 써 국내 콩 생산기반을 위협하고 애꿎은 생산농가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절차상 하자가 있는 두부산업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은 반드시 해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무현 충북 괴산 불정농협 조합장은 “국산콩은 수입콩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기업이 수매량을 줄이면 농가피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두부제조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에서 해제하거나 연간 8000t에 달하는 군납과 6000t 소비량에 맞먹는 학교급식용 두부 원재료를 국산콩 사용으로 의무화한다면 콩 자급률이나 콩값 지지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