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받은 한 산란계 농장에서 사육되는 닭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강원 춘천에서 산란계농장인 ‘양지마을 오탄농장’을 운영하는 김구봉씨는 자신이 생산한 달걀을 일반 달걀보다 2배 이상 비싸게 판매해도 소비자들로부터 인기가 높아 늘 밀려드는 주문량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판매하는 달걀은 일반 농가의 달걀과는 생산방식부터 확연히 다른 동물복지 개념에 맞게 생산하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김씨는 “닭들이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먹이활동을 하며 알을 낳는다”면서 “가격이 비싸도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산한 달걀을 찾는 소비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축산물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국내산 축산물의 품질 차별화를 위한 대책으로 동물복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동물복지를 ‘동물이 건강하고, 안락하며, 좋은 영양과 안전한 상황에서 본래의 습성을 표현할 수 있고, 고통·두려움·괴롭힘을 받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다시말해 인간이 필요에 의해 동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책임을 갖고 동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축산업에 동물복지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2007년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동물복지가 주요 의제로 채택되면서부터다. 당시 EU는 우리나라 축산업의 밀집사육 방식과 도축과정을 언급하며 동물복지가 보장되지 않은 축산물을 교역 대상에 올려놓기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동물복지형 축산에 대한 국제적 흐름에 맞춰 동물보호법을 개정했고(2011년), 2012년부터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와 ‘동물복지형 축산물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로부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농장은 산란계 46곳과 돼지(올해 처음 시행) 1곳 등이다. 정부는 올 연말엔 육계, 내년엔 한·육우와 젖소에 대해서도 동물복지 농장 인증제를 시행할 계획이어서 인증 농장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축산 전문가들은 국내 축산농장에 대한 동물복지 인증이 늘어나면 국내산 축산물의 품질 차별화에 따른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쾌적한 환경에서 자란 가축일수록 안전한 축산물일 수 있다는 소비자들의 신뢰로 이어져 높은 값에도 불구하고 그런 축산물이 인기를 얻을 것이라는 데 근거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의 달걀은 일반 농장 달걀보다 2~3배 높은 값에 팔리고 있으며, 돼지는 20% 정도 농가 수취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수입 축산물에 비해 취약한 국내산 축산물의 가격경쟁력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으로도 동물복지는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축산업에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우선 인증 기준이 국내 축산업 현실과 동떨어져 대다수 농가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인증을 받기까지 농장관리자의 의무사항이 까다롭고, 가축의 건강상태 파악과 사육시설 환경 및 밀도를 맞추기가 어려워 인증 취득을 생각했다가 포기하는 농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충남지역의 한 양돈농가는 “나라마다 다른 축산 환경을 고려해 동물복지 인증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유럽 기준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라며 “이를테면 비육돈의 돈사 권장 사육온도를 15~18℃로 유지하라는 것은 여름엔 에어컨을, 겨울엔 온풍기를 틀어주라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농가가 인증을 받기 위해선 시설 확충비와 인건비 등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일정면적에서 관행방식보다 훨씬 적은 가축을 사육하다 보면 생산성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농가의 손실을 만회할 충분한 보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이 역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인증 취득농장에 대한 사후 관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자칫 부실한 관리로 이어질 경우 오히려 소비자 신뢰를 추락시키는 등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축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동물복지를 담당하는 중앙부처(농식품부·검역본부) 인력은 모두 합쳐야 10여명 정도인데, 이들이 인증 정책과 사업계획 수립, 인증 심사, 사후 관리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며 “동물복지 인증에 대해 담당자와 전화통화 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말이 현장에서는 자주 들린다”고 말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