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과 요천, 춘향이 등이 연상되는 전북 남원. 이곳의 대표 음식은 추어탕이다. 추어탕은 먹기 직전에 넣는 젠피(제피·화초·정초·산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로 그 맛이 완성된다. 초피나무 열매껍질을 가루로 빻은 젠피는 코끝이 알싸한 매운 맛과 강한 향을 지닌 향신료이다.
초피나무는 3~7m 높이로 자라는 떨기나무로 늦봄에 연노란색 꽃이 모여서 피며, 잎은 가장자리가 오돌오돌하다. 열매는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잘 익으면 벌어지면서 씨는 검은색, 씨를 둘러싸던 부분은 짙은 밤색으로 변한다. 열매껍질에는 약 4%의 정유성분을 포함한 다양한 유효성분이 들어 있다. 특히 강한 매운맛을 내는 산솔 성분이 다량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은 강력한 국소마취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추어탕 등을 먹을 때 너무 많이 넣으면 혀의 감각이 둔해지고 얼얼한 느낌이 오래간다. 그러나 적당량 넣으면 생선·육류의 비린내를 제거하고 입맛을 돋워준다. 또 소화를 도우며 어독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다. 열매가 익을수록 매운맛과 국소마비 작용이 강해지는데, 이 매운맛은 살충작용도 강하다. 초피 열매껍질을 민간에서는 구충제 및 방향성 건위약이나 염증약으로 많이 쓴다.
전남 구례와 순천, 경남 하동 등지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초피 열매껍질을 넣는데 감칠맛을 더해주면서도 잘 시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초피나무 잎은 향이 매우 독특하고 강해 옛날에는 모기향 대용으로도 이용했다.
모양과 쓰임새가 비슷해 초피나무와 산초나무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나무다. 초피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쪼글쪼글하고 부드러우며 향이 강하다. 산초나무는 잎이 마주나며 뻣뻣하고 크며 광택이 난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가시로, 초피나무는 마주나는 반면 산초나무는 어긋난다.
초피나무의 열매는 가을에 잘 익었을 때 따는데 씨앗을 짠 기름을 초목이라 하여 암환자들이 구해서 먹었다. 단 산화가 빠르므로 조금씩 짜서 먹도록 한다. 향신료로 쓰이는 열매껍질도 공기가 닿지 않게 밀봉해 뒀다가 먹을 때마다 조금씩 꺼내 가루로 빻으면 고유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