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부터 이어진 채소 값 폭락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농산물 수급안정 정책을 손질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농산물 수급안정제도 보완 및 개선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개선안 내용과 유통주체들의 반응을 알아본다.
◆제도 보완을 위한 6개 단기과제=수급안정제도 개선안의 기본방향은 ‘정확한 정보에 의한 수급판단 기반을 구축하고, 단계별 정책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운영방식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를 목표로 농식품부는 제도 보완을 위한 6개의 단기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농업관측의 수급조절 실행력 강화다. 관측정보가 실제 농가 및 소비자의 생산·소비조절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관측정보의 보급·활용시 농촌진흥청과 협력하고, 관측의 분석 내용도 작물의 생육단계별로 차별화할 방침이다.
둘째는 시장 친화적 비축사업 운영이다. 비축 규모를 거래 활성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 양념류의 경우 평년 생산량의 5~10% 수준에서 운영키로 했다.
또 공급과잉이 현저할 때는 시장 방출 외에 저소득층 무상기증이나 가공업체 공급도 검토할 방침이다. 일례로 건고추 공급 과잉이 심각할 경우 비축물량을 외국산을 사용하는 장류업체에 수입가격 수준으로 공급해 신규 수요를 창출하기로 했다.
셋째는 계약재배 주체의 판매능력 확충이다. 계약재배에 참여하는 농협 등이 고정거래처를 70% 이상 확보하면 자금지원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또 경쟁촉진을 위해 농협 이외의 농업법인 등도 계약재배 참여를 허용할 예정이다.
넷째는 수급조절 매뉴얼의 산지 연계성 보완이다. 현재는 도매가격을 기준으로 위기 단계가 설정됐지만, 앞으로는 산지가격이 하락해도 매뉴얼이 가동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가격차 완화를 위한 직거래 기반 확대, 생산자조직의 자율적 수급조절체계 구축이 각각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단기과제로 제시됐다.
◆지자체 역할 강화 등 4개 중기과제=농산물 수급안정제도 개선을 위한 중장기 대책으로는 우선 특정 품목에 한해 지방자치단체가 수급을 관리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가격변동성이 높고 지역 집중도가 30% 이상인 겨울대파(전남)와 당근(제주)·양배추(제주) 등은 해당 지자체가 파종 단계에서부터 관리해 생산량을 조절토록 할 예정이다.
또 공급 과잉시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조성한 수급안정기금(가칭)을 활용해 시장 격리 등으로 출하량을 조절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올해 안으로 지자체와 협의한 후 우선 순위를 정해 시범 시행하기로 했다.
시장 출하를 제한하는 유통명령제 도입도 포함됐다. 현재 감귤에 시행되는 유통명령제는 공급 과잉으로 시장 가격이 크게 하락했을 때 품위가 낮은 농산물의 도매시장 반입을 일정 정도 제한하는 행정명령이다.
배추를 대상으로 우선 실시할 계획으로, 포장망 크기가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도매시장 거래를 금지하는 방식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를 위해 유통명령 발령에 필요한 수급·가격 요건을 마련할 계획이다. 더불어 정보통신기술 (ICT)을 활용한 관측 체계 구축, 장기적인 수출선 확보를 통한 수출 확대 방안 등도 중장기 대책으로 제시됐다.
◆유통주체들 “실효성 의문”=농식품부가 마련한 농산물 수급안정제도 개선방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내용 전파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 하지만 몇몇 유통주체들을 중심으로 기대했던 내용이 빠져 있다거나, 일부 내용은 실효성이 의문스럽다는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배추 출하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기존 수급안정대책이 지닌 가장 큰 결함은 수급안정 매뉴얼의 기준가격이 생산원가 등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기준가격을 손보지 않으면 정부 대책은 항상 뒷북만 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장기적으로 지자체의 역할을 확대한다는 데 대해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남의 한 산지출하조직 관계자는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 수급조절 업무를 맡겨선 안 된다는 점을 여러 사람이 얘기한 것으로 아는데, 개선안엔 지자체가 포함됐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아울러 유통명령제 도입에 대해서도 일부 회의적인 입장이다. 서울 가락시장의 한 유통인은 “유통명령제의 경우 공급 과잉시 하품 출하를 금지해 시세 형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해마다 작황이 다르기 때문에 품위 기준을 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배추의 경우 망 크기를 실물과 다르게 출하하는 등 편법이 발생할 여지도 있어 세심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