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면서 농업계가 비상이다. 엘니뇨란 적도 지역 중앙 및 동태평양의 수온이 평소보다 높아지면서 세계적으로 홍수와 집중호우 등을 일으키는 이상기온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8월부터 엘니뇨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엘니뇨로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일반물가가 상승하는 현상) 발생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국제곡물수급 및 가격에 대한 관찰을 강화하는 등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엘니뇨, 8월 발생 가능성 최소 70%=세계 주요 기상관측기관들은 올 하반기에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엘니뇨 발생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미국 기후예측센터는 올 연말까지 엘니뇨 발생 가능성을 65% 이상으로 전망했고, 세계기상기구(WMO)도 하반기 이후에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호주 기상청 역시 8월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최소 70%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했다. 로저 스톤 남퀸즐랜드대학교 교수는 “태평양에서 엘니뇨 현상이 이미 부분적으로 발생했다”면서 “호주는 (엘니뇨가) 초기단계에 진입했을 수 있는 만큼 가뭄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일본 기상청도 엘니뇨가 여름에 발생, 가을까지 지속될 것으로, 우리나라 기상청 또한 8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각각 보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엘니뇨는 1980년대만 해도 2차례에 그쳤지만, 2000년대 들어 4차례나 발생하는 등 갈수록 발생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엘니뇨가 심하면 중남미와 미국 남부지역에선 홍수 피해가, 호주·동남아·남부 아프리카에선 가뭄 피해가 각각 발생했다”고 말했다.
◆세계 주요국, 관찰 강화=엘니뇨로 인한 기상이변은 세계 곡물 작황과 가격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1997~1998년 발생한 엘니뇨가 대표적인 예다. 이 기간에 태평양 연안 국가는 물론 유럽까지 홍수가 발생해 2100여명이 사망하고, 330억달러 이상의 경제적인 피해가 났었다.
특히 우리나라도 1998년 엘니뇨에 의한 집중호우로 농작물 8만6000㏊와 농경지 유실·매몰 8000㏊ 등의 피해가 발생, 2950억원의 복구비를 지원했다. 같은 해 필리핀은 가뭄으로 3만5000㏊의 농경지가 피해를 봤고, 곡물 생산액도 전년대비 20% 감소했다. 브라질 역시 가뭄과 대형산불로 농작물 30%가 유실됐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국들도 엘니뇨에 따른 피해 대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호주·일본 등은 엘니뇨 발생에 대한 관찰을 강화하고 있고, 인도 정부는 식량 비축을 확대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정부도 물 공급관리체계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0일부터 농업재해대책상황실을 설치·운영 중이다. 엘니뇨에 따른 폭염과 지역별 집중호우, 태풍 등 이상기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김종인 농협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이 지난해 기준 23.1%로 낮고 옥수수·설탕·커피·대두 등 수입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많은 만큼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농업 피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억 기자 eok1128@nongmin.com
●엘니뇨=페루·칠레 등 중남미 동쪽의 바닷물 온도가 평상시보다 따뜻해지는 현상. 동남아와 호주에선 극심한 가뭄이, 미국 남부와 중남미 해안 등에선 폭우가 쏟아지는 등 기상 이변이 나타난다. 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12월 말 나타나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를 뜻하는 엘니뇨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