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농업인 유귀순씨(앞쪽)와 김현수 경북 서안동농협 고추공판장 경매사가 고추의 생육상태를 살펴보며 올 햇건고추 시세가 어떻게 형성될지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햇건고추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건고추는 최근 몇년새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요동친 대표적인 품목. 당연히 시중 가격도 큰 폭으로 널을 뛰어왔다. 건고추 시세가 1년이 멀다하고 출렁이는 건 재배 특성에 기인한다. 노지에서 재배돼 생육기간 중 고온이나 가뭄 정도, 강우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작황이 크게 달라지고 이는 가격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 햇건고추 시장의 관전 포인트 역시 중·북부지역을 중심으로 계속되는 여름가뭄이 작황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산지농협·농가가 보유 중인 재고물량 처리 여부 또한 햇건고추 시세형성의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건고추 작황은 지역별로 크게 엇갈리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영남·충청권은 부진을, 호남권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게 산지 관계자들의 얘기다. 특히 건고추 최대 집산지인 경북 안동시의 경우 가뭄에 따른 생육저하가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나 관심을 끌고 있다.
7월29일 안동시 일대의 고추밭을 확인한 결과 작물체의 키가 예년보다 눈에 띄게 작았고 고추의 과형이 구부러지거나 과피가 울퉁불퉁한 것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고추는 작물체의 키가 커지면 흰 노끈 같은 줄을 가로로 길게 연결해 작물체를 지탱해 줘야 한다. 수확이 가까운 이맘때면 대개 아래위로 네개 이상의 줄을 친다는 게 농민들의 설명. 하지만 둘러본 밭에서는 세줄 혹은 두줄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작물체 생장이 지연됐다는 얘기다.
김현수 서안동농협 고추공판장 경매사는 “고추는 보통 네번 정도 수확하는데 첫물과 두물을 따고 나면 수확할 것이 없겠다고 하소연하는 농가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줄기 윗부분에 연이어 피어야 할 꽃이 오랜 가뭄으로 개화는커녕 꽃망울조차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7월28일 개장한 북안동농협의 홍고추경매장에선 첫날인데도 10t이 채 못 되는 물량이 출하돼 이런 상황을 반영했다. 지난해 개장 첫날엔 40t이 출하됐다.
충남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항태 태안 안면도농협 상무는 “최근 비다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선지 달린 고추도 적을뿐더러 품질 또한 좋지 않다고 걱정하는 농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남지역은 상황이 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정우 전남 영광농협 차장은 “남부지역엔 6~7월 비가 적절히 내려 생육은 굉장히 좋다”면서 “본격적인 출하는 8월 중·하순께 이뤄질 것 같은데 그때까지 날씨만 괜찮다면 생산량은 예년 수준을 웃돌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올 건고추 생산량이 2011년 수준까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당시 7~8월 계속된 비로 인해 탄저병 등 병해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2009년만 해도 11만7300t이던 건고추 생산량이 사상 최저치인 7만7100t으로 뚝 떨어졌다. 시세가 한근(600g)당 1만5000~2만원선까지 폭등해 외국산 고추가 대거 수입되는 등 사회적으로도 큰 홍역을 치렀다.
농가들은 작황 부진을 걱정하면서도 값 상승폭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고추 재배농업인 유귀순씨(60·경북 안동시 풍산읍)는 “하루 수확 인건비가 7만~8만원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물량이 많고 가격은 약세인 것보다는 물량이 어느 정도 줄고 가격은 강세를 띠는 게 농가들 입장에서는 솔직히 반갑다”면서 “한근당 못해도 1만원 이상은 나오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하지만 물량 감소에도 값 상승폭은 농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과도한 재고물량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재고물량은 정부 비축물량(8172t)과 산지농협 보유분을 합해 모두 1만3170t으로 지난해 이맘때의 두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햇건고추(화건)의 시세는 낮게는 7000~8000원 선, 높게는 1만원 선에 달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홍고추 초반 시세와 일부지역 밭떼기 시세를 견주어 봐서다. 북안동농협의 경매 첫날 홍고추 경락가는 1㎏당 평균 2300~2400원이었다. 홍고추는 두물째까지는 4㎏이 건고추 한근과 맞먹는 양으로 환산되곤 한다. 따라서 별도 건조비용을 감안하면 건고추 시세는 한근당 1만원~1만1000원에서 출발하지 않겠느냐는 계산이 나온다. 영광 등 호남지역 건고추 상품 한근(양건)의 밭떼기 호가가 8000~9000원에 형성되고 있다. 대개 양건은 화건보다 한근당 1000~2000원 높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