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제역 등 악성 가축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축산농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진적인 방역시스템을 갖추고, 효능이 높으면서도 확실한 백신을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소에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
“효과도 없는 백신을 접종하라는 방역당국을 더이상 믿을 수 없습니다.”
현재 시판 중인 돼지유행성설사병(PED) 백신과 관련해 방역당국인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시판 중인 PED 백신의 효능을 검증한 결과 새끼돼지의 설사를 예방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생산자단체인 대한한돈협회는 ‘황당하고 당혹스럽다’는 반응 속에서도 ‘이제는 뭔가 정리가 됐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백신 효능에 대해 업계 및 방역당국과 더이상 입씨름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양돈농가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을 얻은 것 같아서다.
수의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황윤재 한국양돈수의사회장은 “PED 백신이 새끼돼지들의 설사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진 만큼 더 이상 백신 효능을 둘러싼 논의는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악성 가축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선 방역당국이 축산농가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우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방역당국이 허가해 준 예방 백신의 효능과, 수시로 발생하는 전염병의 원인을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방역 정책에 대해서도 축산농가들은 불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돼지에 의무적으로 접종해야 하는 구제역 백신의 경우 양돈농가들은 돼지에 백신을 접종하면 그 부위에 하얗게 고름이 생기는 현상(이상육)이 발생한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 한 양돈조합이 이상육 출현율을 조사한 결과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2010년엔 4.2%에 그쳤으나 백신 접종 이후인 2011년엔 31.7%, 2012년엔 41.6%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돈협회는 이로 인해 1년 동안의 경제적 손실액이 1290억원 정도(1600만마리 출하 기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방역당국은 농가의 접종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는 방역당국과 축산농가간 신뢰의 벽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 양돈농가는 “정말 농가들의 부주의한 백신 접종 방법 때문에 이상육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백신업체와 방역기관에서 공개 시연회 등을 열어 제대로 된 접종법을 보여주고 이후 이상육 발생 유무를 공개하면 된다”며 “만일 시연회에서 한 방법대로 접종해 이상육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농가들이 왜 그대로 실천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에 대해서도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방역당국은 AI가 발생할 때마다 겨울철새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혀왔지만 한여름철인 7월에 AI가 발생하자 축산농가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풍조가 확산되면 악성 가축전염병 ‘방역전선’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며 선진적인 방역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축전염병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백신 개발에 대한 기술력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충남지역의 한 수의사는 “가축전염병 예방을 위한 민관 공동연구 등을 통해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며 “신뢰가 바탕이 돼야 효과적인 전염병 예방 대책을 마련할 수 있고 농가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방역 참여도 기대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동물약품 업계도 국내 실정에 맞는 백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유통되는 구제역 백신은 원재료를 외국에서 들여와 다시 국내 업체에서 배양해 만들고 있다. 더욱이 이 백신은 소 구제역 발생을 막는 것이 주목적이어서 돼지에 접종할 경우 항체 생성률이 60% 정도(소의 경우 90%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수의과대학 교수는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축질병이 발생하자 중국에서 관련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으나 나라별로 질병 특성이 다를 수 있어 이를 거부한 적이 있다”며 “우리나라의 동물약품 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백신 개발을 미뤄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