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동안 피었던 꽃들을 다시 보기로 한다.
손톱만한 주릅잎에서, 너무 귀여운 앵초, 너무 예쁜데 독성이 강한 은방울.
바위 틈에서 자라는 초롱까지.
나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어느 소녀가 길가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다. 망설이고 있다. 이 예쁜 꽃을 꺾어야
할까 말까. ‘내 작은 방 조그만 탁자 위에 있는 화병에 꽂아놓을까. 그러면 아주 예쁘겠지’ 이
런 생각이 소녀를 길가에 잡아두고 있었다.
그 꽃은 가까이 보아야 꽃잎이 쌀톨 만하고 세 장으로 돼 있으며, 키가 소녀의 엄지 길이 정
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이 꽃 이름을 몰랐다. 가슴은 울렁거렸고, 꽃을 갖고 싶은
생각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녀의 갈등이 심해졌으나. 망설였고, ‘꺾으면
안 돼’라는 소리가 기억의 방에서 들렸다. 손끝이 떨렸다.
아빠가 퇴근하면서 이웃집 담장에서 꺾어다 주신 덩굴장미는 비에 젖은 듯 촉촉하게 젖어있었
고, 향기가 아주 좋았다. 젖은 풀에서 나는 냄새였다. 냄새는 화려했고, 진했다. 소녀는 꽃을
가까이 보았고, 자세히 보았으며, 이 꽃을 기억해 두기 위해 여러 번 살펴보고 그림을 그리기
도 하였다. 꿈에서도 이 꽃은 소녀의 손에 쥐어있었으며, 탁자 위 꽃병에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소녀는 울었다. 꽃은 시들었으며 구겨진 휴지처럼 말라버렸고, 색은
바래었고, 화려했던 꽃 모양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소녀는 그 꽃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꽃은 생명을 다했고, 아름다운 모양과 어둠 속에서도 촉촉하게 빛나던 진한 빨간색의 꽃은 없
었다. 그 꽃은 소녀의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되었다.
소녀는 다시 그 기억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시들어가는 꽃을 다시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
소녀는 한 번 더 길게 자세히 꽃을 들여다보고는 살며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 이름 모를 꽃아, 난, 너에게 눈꽃이라고 부를 거야”
“내일도 또 올 거야, 그리고 너를 부를 거야, 눈꽃이라고 말이야”
“안녕히, 눈꽃아. 넌 내 안에 있을 거야”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었다. 날듯한 발걸음 끝에선 흙냄새가 피었고, 걷는 소녀
의 머릿속에는 하얗고 아주 작은 예쁜 꽃 하나가 나비처럼 날며 소녀를 집으로 이끌고 있었
다.
작은 꽃 하나도 모든 생명의 조직을 다 갖추고 있다.
크기가 꽃의 존재를 그르치지 못한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스스로 존재하며 모두와 관계
한다. 생명은 이미 생명으로부터 이어져 왔기에 이전의 모두이다. 그러기에 생명은 우주의 한
점이며, 전체의 한 점이다. 하나는 또 하나를 생산하고 그것이 이어져 더 큰 하나를 꾸려낸다.
하나에서 시작하는 존재의 출발은 시작도 끝도 구분할 수 없는 거대한 원과 같다. 이 원은 구
가 되고 늘 변화하는 현재 생명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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