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철을 맞아 구기자 밭 로터리 작업중인 이상범 사라골구기자 대표. © 사라골구기자
“가장 비싼 구기자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충남 청양군 운곡면에 귀농한 이상범 대표(59). 귀농 4년 차.
초보농부지만 4,000㎡(1천200평) 규모의 구기자를 재배한다.
여기다 농업용 굴착기와 트랙터 2대, 1톤 트럭 1대. 여기다 저온창고와 건조기는 기본.
3월 중순 농장을 찾았을 때 잘 숙성된 우분 퇴비를 살포하는 굴착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밑걸음용 우분 퇴비가 쌓여있는 모습. © 사라골구기자
구기자 1인 농업경영체제 구축
지난해 구기자 값이 최고치를 찍었는데, 이 대표가 생산한 비싼 구기자는 무슨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을까.
다름 아닌 앞서 언급한 투자비용 대비 구기자 판매가격이 그렇다.
지난 2022년에는 100만 원 수익을 올렸다. 그다음 해는 500만 원, 지난해는 1천200만 원 정도.
재배 면적에 비해서 큰 수익은 아니지만, 여기엔 그만의 철학이 있다.
바로 ‘1인 농업경영체제’ 구축이다.
구기자 작물은 특성상 손이 많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확 철인 8월부터 11월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꽃이 피기 무섭게 익어가는 열매를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적기에 신혹하게 수확해야 하기 때문.
이에 이 대표는 당장 수익보다는 생산성 있는 농장 경영에 초점을 맞췄다.
1인 농업경영은 말 그대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한 사람의 힘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농장 설계도를 그리는 것.
다르게 말하자면 작업의 효율화와 기계화를 통해 작업의 편리성과 신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경영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구기자 가지치기 중인 이상범 대표. © 사라골구기자
구기자 수확기 기계 제작 및 특허 출원
그 때문인지 아직 큰 수익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농사에 진심을 담아 실천해 옮기고 있다.
그동안 충청남도농업기술원에서 중장비 교육을 이수하고
청양농업기술센터 농업인대학(명품구기자반, 스마트농업반)을 다녔고, 선도농가 현장실습 등을 바탕으로 귀농준비에 매진했다.
귀농인으로 도전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자신의 전공(자동제어)을 접목해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순간이다.
그것은 바로 기계수확이 어려운 구기자 수화의 기계화다.
궤도를 이동한 이동체에 진동장치를 설치해 이동하며 자동으로 구기자를 수확하는 것.
본인이 직접 설계한 이 수확기는 몇 차례 실험을 거쳐 업그레이드 중이다.
“기계장치가 고랑을 이동하며 털어담는 원리입니다. 털어지기는 하는데 아직 좀 더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범 대표가 설계하고 제작한 구기자 수확기 시제품. © 사라골구기자
이 대표는 기계가 이동할 수 있도록 보통 150cm의 이랑을 250cm로 넓혔다.
제작비와 가공비 등 지금까지 2천만 원 넘는 자비를 지출했다.
이처럼 주변 도움 없이 설계도를 그리고 장비를 깎고 조립하는 과정을 거치며
구기자 다수확 도전에 나선 것이다.
“구기자는 100% 수작업에, 작업이 많고 힘들어서 재배농가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고, 가격도 상승하는 추세, 판매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
마치 신발 영업사원이 아프리카에 갔더니만 아무도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아서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처럼 구기자 재배는 무한한 개선 가능성과 아무도 경쟁자도 없는 블루오션이라 생각해요”
이와함께 이 대표는 연세드신 어르신들의 재래식 재배, 건조방법을 탐문하며 수확, 세척, 건조 작업의 효율 개선의 정답을 찾는 경우도 많다.
재래의 방식에서 현대의 취급 위생과 설비의 청결, 농산물 우수인증(GAP) 기준을 접목하며 믿고 찾을 수 있는 농산물의 정답을 찾아내고 실천해 내고 있다.

일반 구기자 이랑보다 20cm 더 넓은 250cm 이랑을 만들어 기계화 작업이 가능케 했다. © 사라골구기자

인근 축산 농가에서 얻은 우분 퇴비로 가꾼 구기자 밭.
공동상수도 관리 등 지역사회 보탬
귀농 4년 차는 그의 일상도 바꾸었다.
현재 그는 마을에서 공동상수도 관리 및 한전에서 지원한 비료, 퇴비 등을 담당한다.
최근에는 운곡면 주민자치위원으로 2년간 활동하며 그 보폭을 넓히고 있다.
“농촌 사람들은 그냥이 없어요. 내가 무엇이라도 하나 도움을 주면 어김없이 보답해 주는 것이 시골인심 같아요”

구기자 삽목 중인 이 대표. © 사라골구기자
잠시 요즘 사는 이야기를 물었지만,
이 대표는 구기자 매력에 푹 빠진 자신의 스토리를 술술 풀어냈다.
그 첫 번째가 구기자의 희소성과 잠재력.
충남 천안시에서 25년 거주하다 생면부지인 청양에 발을 디딘 것도 구기자 때문이다.
구기자의 고장 청양 중에서도 구기자 전통 주산지인 운곡면은 그래서 특별하다.

붉은 빛이 흰 눈과 어우러져 더 운치 있는 구기자 나무. © 사라골구기자
'블루오션' 구기자의 가능성에 도전
“일단 구기자 재배하면 재미있는 일들이 아주 많이 생길 것 같았어요.
대부분이 건강식품 가공품으로 제작되다 보니 일반인들에겐 아직 많이 생소하죠”
더구나 고령화로 구기자 재배농가가 부쩍 줄어들고 대농 중심으로 재편되다 보니,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렇지만 구기자는 아직 그 자체로 유행된 것이 없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주장.
“구기자는 판매 걱정은 안해도 되는 농산물입니다. 어떤 농산물이 그렇겠어요.
저장성도 좋아, 잘 건조하면 1년간 보관도 가능하구요.
가능성이 보일 것 같지 않나요”
재배를 비롯해 수확, 세척, 건조, 유통에도 무한한 개선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고, 활용 및 응용 방법도 무궁무진하다는 이 대표.
이 엄청난 가능성에 6시그마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재미난 일을 많이 만들 수 있겠다는 야심을 엿 볼 수 있었다.
6 시그마?
기업에서 전략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정립된 품질 경영 기법 또는 철학으로서,
기업 또는 조직 내의 다양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현재 수준을 계량화하고 평가한 다음 개선하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경영 기법이다.

과학영농을 위한 구기자 밭 토양 비료사용 처방서. © 사라골구기자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전 직장에서 대규모 플랜트를 설치하고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문제와 이를 해결한 경험이 구기자에도 적용 가능하다면...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구기자 재배 과정에서 이것을 체계화하고 개선하면 다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처음 해보니 잘 안 되네. 그러면 문제가 뭐지...”
숱한 물음표와 궁금증의 과정에서 해답은 나오는 법.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구기자 수확기도 그렇고,
요즘 인기가 많은 구기자 구증구포 제조기도 직접 설계했다.
이미 특허도 받았으니 실용화 단계만 남았다.
문제해결 경영기법이 농업과 만났을 때,
수확량 증대는 물론 다른 농가와의 협업과 성공사례 공유는
농촌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초경재배 구기자 밭. © 사라골구기자
청양에 정착하기까지 100여 곳 답사
직장생활하는 동안 몇 번의 정신적 피로감(번아웃)을 느낄 때마다 찾은 곳이 산이다.
어쩌면 산나물을 키우는 임업인이 될 수도 있었던 이 대표.
인천 강화도부터 경북 청송군까지 카라반을 끌고 100여 곳이 넘는 산지와 농지를 답사했다.

이 대표가 귀농 정착지를 찾기 위해 답사한 100여 곳의 위치가 스마트폰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농장은 재미난 실험장, 나만의 아지트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찾은 청양은 재미난 실험장이자 그만의 아지트가 됐다.
하루종일 혼자서 먼지를 뽀얗게 덮어쓰고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이웃들은 혼자서 죽어라 일만 한다고 걱정하지만,
그의 속내에서는 이런 일들이 꿈틀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쉬엄쉬엄 하라며 음료수도 건네시지만, 속으로는 저 많은 구기자를 혼자서 어쩌려고...
저러다 농사 포기하고 도시로 떠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의 눈길도 보내신다고 한다.
이 대표는 자동제어 엔지니어에서 ‘1인 경영 구기자 농장모텔’ 구축을 위해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여기다 기계화를 통한 구기자 대량수확을 비롯해 선별기, 구증구포 구기자 자동 제조기 제작,
구기자 대중화 등 혼자만이 아닌 더불어 고민하고 공유하며 성장할 수 있는 로드맵을 구축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구기자 밭 인근에서 벼 농사를 병행하고 있다. © 사라골구기자
사라골구기자 홈페이지 (http://99za.modoo.at)
농장현황, 농장의 조성 이력, 위생안전관리, 구기자농장 경영원칙, 계절별 갤러리와 구기자판매, 활용법 등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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