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cheongyang-gun
도역하는군정! 신명나는 청양!

목면사무소

  • 업무시간안내
    • 근무요일 : 월~금(토,일 공휴일 휴무)

    • 근무시간 : 09:00~18:00

          (점심시간 12:00~13:00)

마을유래

우리마을소개 마을유래

마을유래

목면

목면 일대는 지석묘와 출토되는 각종 기물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는 열기현에 속해서 백제가 서북쪽으로 발달하는데 큰 몫을 하였고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각각 열성현과 정산현에 속해서 부유한 농경마을로 성장하였으며 조선조에는 정산현으로 학문에 뜻을 둔 선비들의 정착지가 되었다.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 때 잉면의 문성리, 옥현리의 일부와 읍면의 백곡리, 공주군 반탄면 진두리, 성두면 반곡리, 건천리, 평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목면이라 칭하였으며, 현재는 청양군에 속해서 지곡, 화양, 신흥, 안심, 송암, 본의, 대평리의 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지곡리

지곡리는 마을 북쪽에는 계봉산이 솟아 있고 산꼭대기에는 백제시대의 두릉윤성의 옛 성터가 남아 있으며 성 아래 마을에 큰 연못이 있어 마을 이름을 못골(池谷)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곡리는 예부터 정산현의 관문이었으며 금강 수로와 육로를 잇는 요지였다. 1930년경에는 목면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화양리

화양리는 정산을 중심으로 석양에 햇빛이 화창하게 비춘다 하여 화양리라 불린다. 백제시대 열기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열성현,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정산현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산미(五山美)와 가마동(加馬洞)을 병합하여 법정리명을 청양군 목면 화양리라고 하게 되었다.

신흥리

신흥리는 약 330여년전 윤씨가 많이 살고 있어 신흥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시 자연부락 무점골, 송죽골, 번거못, 음저못, 임장골, 구수동, 송죽골을 합하여 법정리명을 신흥리라 하였다.

안심리

안심리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에 안심사라는 절이 있어 절의 이름을 딴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두리봉이 병풍을 두른 듯이 솟아 있고 산줄기는 건지동 부락을 싸 안은 듯 남쪽으로 뻗어있다. 서쪽으로는 마근동과 장터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용봉천, 어천이 공주 우성면과 경계하고 남쪽으로는 본의천이 어천과 합류하여 흐른다.

송암리

송암리는 미궐산 아래 있으며 마을에 소나무와 바위가 많이 있어 송암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송암리는 36번 국도 공주와 청양을 경계하는 다리에서부터 여우고개 사이의 양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양군의 관문이자 목면의 관문이기도 하다. 본의리, 안심리와 경계하고 있으며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시 솔안, 새뜸, 용곤이, 장구동, 나분동, 바닥골, 장금절, 중새터를 합하여 법정리명을 송암리라 하였다.

본의리

본의리는 옛날에 군자와 현인들만 살았는데 의를 근본으로 중시하였다 하여 본의리라 칭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목면에 속하게 된 본의리는 본의실, 무수동, 조음방, 동막, 계봉 등 5개 마을을 병합하여 법정리명을 본의리라 하게 되었다.

대평리

대평리는 예로부터 전답이 많아 대평리라고 칭했으며 가야미, 대평골, 윗새터, 아래새터, 점골 등 5개 마을을 병합하여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시 법정리명을 대평리라고 하였다.

담당부서 :
목면
담당자 :
임유재
연락처 :
041-940-4222
최종수정일 :
2024-04-11
만족도조사

현재 페이지의 정보 및 사용 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메뉴가 명확하게 구분되는가 / 화면구성이 보기 편리한가 / 응답속도가 적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