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1833~1906)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우로 1914년에 건립되었다.
현판의 글자는 고종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선생의 높은 덕을 사모한다”라는 구절에서 ‘모(慕)’자와 ‘덕(德)’를 취한 것이다. 최익현 선생은 이항로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사헌부 장령까지 올랐다. 나라를 걱정하며 흥선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을 결사반대하는 도끼 상소문을 올려 흑산도에도 유배되었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 처단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압송되었는데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단식을 하다가 풍토병이 심해져 끝내 순국하였다. 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 등 여러 지역에 그를 기리는 사당을 세웠다. 이곳 모덕사는 선생이 살았던 면암고택과 선생의 사상과 생애를 기리는 전시관, 체험관, 누각, 숙박시설로 구성된 면암최익현기념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